우대받지 못한 민권 현주소 보여준 사례
열성적 지역민 자긍심 꺾어버려 아쉬워

하동 사람들이 공들여 시도했던 학교급식 주민발의 조례안이 군의회 문턱에도 오르지 못하고 불발로 끝난 사건은 어쩌면 예견된 불상사일지 모른다. 내용이나 형식 면의 경이로움에도 관은 관습에 치우쳐 반대 명분 발굴에만 애쓴 흔적이 짙고 언론은 경고성 휘파람을 불기는 했으나 단발에 그쳤다. 우대받지 못한 민권의 현주소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였음이 틀림없다.

우선 두 갈래 조례안 중 내용을 본다. 하나는 친환경 학교급식 지원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방사능 예방과 관련된 안전급식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려고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되 역내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사용함으로써 농가소득에도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두 번째 형식 면을 살핀다. 주민들이 자구적 수단으로 필요 조례를 의회를 통해 제정해줄 것을 군 당국에 요구하려면 법정 정족수를 만족시켜야 한다. 전체 주민의 50분의 1이 하한선으로 하동군은 870명만 동의하면 효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참여한 주민 수는 1800명을 넘었다. 그만하면 충분한 조건을 채웠다고 안심한 주민대표들이 남은 기일에 연연치않고 서둘러 군 조례규칙심의회에 넘겼다가 각하 판정을 받고 허탈감에 빠졌다.

하동군은 주민발의로 요청된 조례안이 상위법과 충돌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자치단체의 예산지원 의무를 명시한 부분이 그것인데 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경남도가 파생시킨 학교 무상급식 파탄사태와 무관치않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상위단체의 방침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예산 지원을 할 수 없을 것임은 따로 설명치않아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고 해서 군의 입장을 이해한다든지 옹호할 처지는 아니다. 만일 하동군이 주민 참정권을 존중할 자세가 있었다면 방법이야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상위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행정기술적 고려를 못 할 것도 없으며 걸리는 부분을 고쳐서라도 통과절차를 개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석연치않다면 당사자들에게 알려 수정 제안을 권유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선행적 준비동작이 모두 생략된 채 없던 일로 백지화한 것이라면 배경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처음부터 그 조례안의 존재를 탐탁지않게 받아들였거나 나중에 빚어질지도 모를 예측불가능한 후유증을 꺼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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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에 관한 단체 자체의 조례가 많이 제정돼있지만 주민발의권이 발동된 전례로는 흔치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동은 특히 학교급식에 관한 한 선진지로 꼽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다. 경남도의 예산동결로 학교 무상급식이 중단됐을 때 열성적 학부모들이 현장에 뛰어들어 주위를 감동시켰던 일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그런 지역이기에 어렵사리 성안된 주민발의 조례안을 자치단체가 수용했다면 지역민의 자긍심은 한껏 높아지고 아이들에게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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