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지음
딱딱함 벗고 친근해진 법 문장
일본식 조사 사용 지양
판결문도 단문으로 정리
의료인이 꼭 알아야 할
조문부터 판례까지 수록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헌법 조문 일부다. 누구든 사회적 신분 등으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이를 넓게 해석하면, 어렵게 쓴 법 문장은 평등권을 해치는 셈이다.

지금의 법 문장이 그렇다. 읽기 어렵다. 가독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복잡하게 얽혀 배배 꼬였다. 이 정도면 엘리트 의식 산물이다. 법학을 갓 배우기 시작하면 일상에서 쓰는 말까지 일부러 꼰다. '~아니하지 아니한가' 식으로. 법 문장처럼 말이다. 장난으로 시작한 어법은 버릇이 된다. 이들이 나중에 법률가가 되어 쓰는 판결문, 소장(법원에 제출하는 서류) 등이 나머지 모두에게 쉽게 읽힐 리 없다.

문체는 또 어떤가. 일제 강점기 즈음 성문법 체계인 대륙법을 받아들인 데다가, 광복 이후 영미법 요소를 일부 받아들인 탓에 외국식 문체가 마구 섞였다.

일부 법률가들은 국적 불명의 어려운 법 문장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법 문장을 읽고 쉽게 이해하도록 배려하자는 이야기다. 이들 노력 덕분에 어려운 법 문장이 조금씩 변화하는 추세다.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꾸준히 목소리를 높이는 법률가다. 법 문장을 쉽게 써야 한다고. 그는 지난해 10월 한글날 즈음에 <경남도민일보>에 글을 보냈다.

"대한민국 법률문장은 문체·문법·조사·소유격·접속사에서 생동감을 잃었다. 이제 '오려 붙이기식 입법'은 그만해야 한다. 식민지 입법의 잔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형사소송법 제312조는 법문장이 길어서 가독·이해·해석·인용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실무가와 학생들은 잘 알 것이다. 형사소송법의 복잡한 법 문장을 개조식 문장으로 바꾸면, 실무가와 일반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입법자와 학자들은 우리 모국어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20대 국회에서 입법 문체혁명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형사소송법을 예로 들어 말했지만, 하 교수 지적은 모든 한국 법 문장이 대상이다. 총대 메고 지적하다가 이제는 아예 책을 냈다. <우리들 의료법>이다. 법률문장론 시리즈 1번이니까, 앞으로 여러 권이 나올 참이다.

의료법은 의료인의 권리의무와 책임, 의료기관의 개설과 운영 등에 관한 기본법으로, 의료인이 꼭 알아야 할 필수사항이 92개 조문으로 규정돼 있다. 하 교수는 그런 의료법 조문의 간결성·명확성·가독성을 강조한다. 제1조부터 제92조까지 현행 조문마다 개선방안과 해설을 달고 의사국가고시 문제와 최근 판례까지 소개하고 있다. 특히 판례는 진료거부행위, 태아성감별행위 등 의료법의 쟁점 분야에 대한 질문답변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 책이 특별한 까닭은 단순히 조문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한국 의료법 법률 문장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서다. 법 문장에서 일본식 조사 '의(の)'를 뺐다. '~고' '~데' '~만' '~로' '~나'로 문장을 끊었다.

가독성 떨어지는 판결문도 함께 소개하면서 단문으로 끊었다. 판결문 원래 의미는 살렸다. 책에서 소개하는 대법원 2010.10.28 선고 2008도8606 판결문 변화를 보자.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에게는 그의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보아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되고~"라는 문장을 하 교수는 이렇게 다듬는다.

"인간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에게 업무 성질에 비추어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

의미 있는 변화가 더러 있지만 여전히 법 문장과 대중의 거리는 멀다.

"분명한 점은 국민들이 읽어서 쉽게 이해되는 문체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시민 입장에서 판결문을 읽었다. 의료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판결문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법관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가능한 일이다."(16쪽)

373쪽, 행인출판사 펴냄,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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