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 균형 바라는 젊은층 확산
기업·노동자 만족할 문화 되기를

지난달 며칠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이번 서울 방문 때는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지하철을 한 시간 가까이 타고 내린 다음에 좁고 사람 많은 골목을 지나면 조그만 간판이 빼꼼히 나와 있는, 독립서점이었다.

독립서점은 대형 출판사와 유통의 자본 논리에서 벗어난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사진, 고양이처럼 특정한 주제에 관한 책을 판매하거나 사장의 취향에 맞춰 고른 출판물들을 다루는 독립서점들이 곳곳에 있다. 내가 방문했던 작은 서점에는 사장과 직원의 추천 책들, 그리고 작가와 협업해 만든 소품들이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넓은 테이블 하나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글을 읽고 쓰고, 대화하고 있었다.

독립출판물은 자본 논리에 깎이지 않아서 조금 투박하지만 진솔하고 담백한 것이 매력이다. 조금씩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대형서점에서 팔지 않고, 화려한 마케팅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소비자층이 얇다. 그래서 작가들이 많은 돈을 벌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독립 출판을 배우려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에게 독립 출판은 무력한 직장인이었던 삶에 변주를 주고, 다른 가능성을 싹 틔우는 하나의 문화이다.

'돈이냐 삶의 만족도냐' 하는 문제가 비단 문화와 예술의 영역 안에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청년들이 취업할 때 고려하는 조건 중에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워라밸은 Work &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를 줄여 부르는 말인데, 워라밸 있는 삶이라 하면 '퇴근 후 여가생활이 있는 삶'이라는 의미다. 부모 세대 때 삶의 안정기를 의미했던 집과 자동차, 평생직장을 갖는 일이 우리 세대 청년들에게는 현재의 행복을 희생한다 해도 불투명한 꿈이 되었다. 그래서 돈을 비교적 적게 벌더라도 저녁 시간에 퇴근해 남은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는 생활을 선호한다. 닐슨코리아 왓츠넥스트 그룹에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 75.5%가 '연봉이 적지만 워라밸이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독립출판을 꿈꾸는 청년들이 유달리 별난 사람들은 아니라는 지표다.

청년들의 워라밸 열풍에 많은 기업이 기업문화를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일주일 중 하루는 퇴근 시간 후에 회사가 건물 전체의 전기를 차단해 직원들이 퇴근하도록 장려하거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내문화를 조성하는 등 기업마다 각자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보여주기식으로 운영되는 제도일 뿐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에 지난 7일에는 새로운 근로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국회에서 발족한 '일 생활 균형 및 일하는 방식 혁신을 위한 국회 포럼'(일명 워라밸 포럼)이다. 워라밸 포럼이 기업과 노동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워라밸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앞으로는 '연봉이냐 워라밸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지 않아도 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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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찾아간 작은 서점에는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독립서점 직원이 되어 계산대에 서 있는 작가가 있었다. 그가 펴낸 두 권의 독립출판물을 계산하며 사인을 부탁했다. 작가가 사인과 함께 남겨준 문장을 함께 나누고 싶다. '지금 잘하고 있어요. 마음먹은 대로 다 잘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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