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때 한국군 저지른 학살만행
문대통령 방문…일 아베와 달리 사죄를

대통령의 출타 계획이 있고 가는 곳이 베트남이라기에 신문을 뒤적여보는데 대통령 동정을 다루는 곳은 없다. 뉴스가 워낙 차고 넘치니 대통령 해외 순방 따위는 밀리나 보다. 제왕적 대통령 어쩌고 하더니 "문 패싱이로구나" 중얼거리다 뜻밖의 신문에서 기사 한 꼭지를 건졌다. 이부영 전 의원이 올린 글이다. "저는 감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지난 베트남전쟁 당시 파월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 만행에 대해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씀해주시기를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청드립니다."

동감이다. 우리는 베트남에 빚이 있다. 그들의 시선으로 우리는 침략자의 일원이었고 파괴자며 살상자였다. 꽝응아이성 어느 마을에 세워진 '증오비'의 비문을 읽고 소스라쳤었다. "하늘에 가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인지상정이다. 일제가 우리에게 입힌 상처를 잊지 못하듯이 그들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때 군인들을 보내고 우리는 '대한뉴우스'로 전쟁을 구경했다. '대한뉴우스'는 '나라 안과 밖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노라 공히 말하는 관제 공보물이다. 국립영상제작소에서 만들었고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의무적으로 상영됐다. 불이 꺼지고 영사기가 돌면 첫 화면이 '대한뉴우스'였다. 그것은 이 나라 갑남을녀가 바깥세상을 가늠할 정보가 입력되는 외길이었다. 전쟁이 한창이었다. 씩씩한 우리 군인들의 맹활약이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에 실려 펼쳐진다. 귀신 잡는 우리 해병대가 작은 체구에 빼빼 마르고 눈만 커다란 '베트콩'을 무찌르고 생포하는 순간이나 공병 부대의 교량 건설이나 구호 활동 등 현지인을 위한 대민봉사 장면이 훈훈하게 전개된다. 아이들은 '따이한'을 외치며 믿음직한 우리 국군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손뼉을 쳤다. '반공'을 국시로 삼아 국토의 담벼락을 "간첩 잡는 아빠 되고 신고하는 엄마 되자" "신고하여 부자 되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 같은 표어로 도배했던 시절이다. 무명의 세월이었다.

깊숙이 쟁여놓았던 미 국무성의 비밀문서들이 흘러나오고 전쟁에 관한 여러 시각의 보고서가 발간되고 그러며 가려진 것들이 드러났다. 애당초 미국이 참전의 구실로 내세운 '통킹만 사건'은 월맹군의 도발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군대가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 하며 베트남전쟁이 미국 정부와 군수 기업체, 광신적 반공주의자들이 결탁한 침략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그런 부도덕한 대리전에 동원되었던가?'란 자문에 이르면 등골에 소름이 돋으며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돈, 분단, 경부고속도로, GNP, 피, 박정희, 미국……. 그 참혹한 전쟁에 끼어들어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냐에 관한 평가는 아직도 엇갈리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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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리지만 가해의 역사도 직면해야 한다. 그들, 부모 형제와 자식을 잃은 베트남의 쓰라린 가슴을 위무하고 용서를 비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 될 당연한 우리의 몫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10년간 끊임없는 반성과 사과를 통해 과거사 업보를 털어낸 '메르켈'을 지켜봤을 것이다. 나는 '빌리 브란트'가 겨울비 내리는 바르샤바의 위령탑 아래 무릎을 꿇었듯이 진심으로 베트남 인민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우리 대통령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돈 몇 푼으로 '불가역적 폐기'를 입에 올리는 저 아베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위대한 촛불 민심이 탄생시킨 우리 지도자의 위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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