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성평등 담론 형성 변혁운동
'위드유'로 성적 자기결정권 수호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사람은 없겠지만 누구나 죄를 짓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묵인하고 용납해야 한다는 건 곤란하다.

상대의 적폐를 비판한다고 해서 내 안의 적폐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인간이란 하나 같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미투 운동은 개개인을 대상으로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즉 '너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오나 보자'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미투 운동을 사회 변혁 운동의 일종이라고 본다. 계속해서 '폭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죄가 있고'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

기성세대가 보기엔 오늘날 젊은이들의 민감함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엔 만연했고 누구도 그것에 대해 면전에서 "No"라고 말하거나 가족 단위를 넘어서 폭로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성주의적 사고관의 내면화, 불합리한 권력행사에 대한 적응, 이성 간의 문제에서 무조건적인 여자에 대한 비난. 그땐 그랬다. 폭로를 하려는 용기를 낼 수도 없었고 폭로를 한다 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페미니즘 담론이 형성되고 구체적으로 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 전반적으로 성 문제에 있어 의식 수준이 높아졌을 즈음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단순 실명 거론 폭로가 아니다.

미투는 앞으로 성 문제에서 단호해질 것이고 권력을 이용해 상대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위드유'하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 편에 서서 성적 자기 결정권을 수호할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일련의 캠페인인 것이다.

'너무 민감한 것 아니야?'라고 반응할 게 아니라 이 캠페인의 메시지는 '민감해져야 해'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언어, 스킨십, 술자리 등 과거의 성적 관습과 그걸 가능하게 했던 권력 구조를 무너뜨리고 남녀 평등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다.

이 대열에 같이할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다. 한때 나는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휴머니즘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곁가지를 제거하고 본질, 흐름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이즘에는 한계가 있고 내겐 페미니즘의 한계가 계속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지점에서 완전히 나와는 관점이 충돌해버려서 가까이 할 수 없다. 취지가 좋다고 해서 그 아래 벌어지는 행위와 주장이 모두 온당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폭로에 귀기울이고 대열에 함께하려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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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강남역 살인사건보다도 그 후 이뤄진 문단 내 성폭력 폭로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는 모든 폭로글과 기사를 빠짐 없이 읽고 있다.

요즘에는 또다시 폭로가 왕성해지는 것 같다.

앞서 피해자들은 제대로 조치를 받지 못했지만 뒤를 이어 수많은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피해자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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