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2) 우수리스크~벨로고르스크
벨로고르스크서 만난 알렉산더
오토바이 보관 기꺼이 도와주고
전쟁박물관 등 관람도 안내해줘
친절한 그 마음, 꼭 보답하고파
개발정책으로 시원하게 난 도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나란히 달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바이칼 호수, 몽골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유럽 스페인까지 가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게 이번 여행의 예상 경로이다. 아이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짐을 가득 싣고 아무쪼록 안전하게 완주하는 게 목표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연히 만난 러시아 현지 바이커들의 환대에 첫 단추를 잘 끼운 듯하다. 지구상 육지의 9분의 1을 가진 나라, 남한 땅의 170배에 달하는 나라, 땅이 넓은 만큼이나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나라. 지금의 수도인 모스크바와 옛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유럽과 가깝기에 문화가 많이 발달되어 있지만, 현재 달리고 있는 극동지방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메인 도로가 비포장이었을 정도로 개발이 더디었다.

정부의 극동지방 개발 정책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길도 새로 뚫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발전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러시아 도시를 잇는 국도 형식의 도로는 새로 개설된 덕분인지 길 상태가 매우 좋았다. 땅이 넓어서인지 급커브가 없고 신호등도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이곳에선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근래에는 한국 사람들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많이 이용해서 여행을 한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까지 가는 동안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 기관사들이 간혹 우리를 보고 경적을 울려 응원해주기도 했다. 아들 지훈이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아무르강을 끼고 있는 큰 도시인 하바롭스크를 출발해 벨로고르스크에 도착했을 땐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벨로고르스크에 다다르기 전 오후에 접어들 때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비교적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다.

벨로고르스크에서 만난 알렉산더(오른쪽)와 그의 형.

휴대전화에 켜진 지도를 보고 호텔을 찾아가는데 아까부터 뒤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따라오고 있었다. 호텔 앞에 도착한 후 뒤따라 온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인사를 했다. 이름은 알렉산더, 나이는 나랑 동갑인 47살이었다. 그 친구는 아들을 뒤에 태우고 여행하는 우리가 궁금해서 따라왔다고 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조그마한 호텔이라 주차장이 따로 없었다. 호텔 앞 노상에 주차를 해야 될 상황이었다. 치안이 좋은 한국에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 중에 하나인 도난사건이 이곳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이곳까지 오다 보니 주거지 주택들 담장이 사람 키 두 배로 높았고 대문도 육중한 철문으로 된 곳이 많았다. 여행 중 처음으로 노상에 주차를 해야 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알렉산더가 우리 눈치를 살피더니 자기 개인 창고가 있으니 그곳에 주차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호텔에 대충 짐을 풀어놓고 오토바이를 타고 알렉산더를 뒤따라 갔다.

도시가 그리 크지 않아 10분 정도 따라 가니 알렉산더의 개인창고가 나왔다. 창고 안에 오토바이를 넣은 후 알렉산더의 자동차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호텔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하지만 우리에겐 밤새 걱정거리가 생겼다.

생전 처음 본 러시아 사람에게 유일한 이동수단인 오토바이를 덜컥 맡긴 게 마음에 걸렸다. 간밤에 오토바이를 창고에서 꺼내 팔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의 여행이 이대로 끝나 버리는 건 아닌지, 온갖 걱정과 망상에 자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밤새 뒤척이며 아침 알렉산더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 알렉산더는 약속한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우리가 묵었던 호텔 앞에 나타났다. 알렉산더를 본 순간 마음이 놓이며 깊은 안도가 되었다. 밤새 별스레 걱정했던 내가 부끄럽고 알렉산더에게 내심 미안한 순간이었다.

알렉산더가 일하는 헬기장에서 포즈를 잡은 아빠와 아들.

창고로 가서 다시 오토바이를 찾기 전 우리는 알렉산더의 차를 타고 벨로고르스크 도시 내 전쟁박물관을 관람했다. 야외전시장에 탱크 및 각종 무기들이 즐비했다. 알렉산더는 아들 사진을 찍어주라고 직접 지훈이를 안아서 탱크 위에도 올려주었고 "포따 포따" 소리를 쳤다. 사진이라는 단어가 러시아어로 "포따"였다.

전쟁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온 후 알렉산더는 다시 어디론가 차를 몰았다. 한참 도시를 빠져나가 시외로 가더니 경비가 삼엄한 군부대 앞에 도착했다.

전쟁박물관에서 사진을 찍는 지훈이.

군인들이 초소에서 밖으로 나와 우리가 탄 차 앞으로 다가왔다. 알렉산더가 그 군인들에게 뭐라고 잠시 이야기하니, 군인들이 출입구 바리케이드를 올려 주었다.

우리가 들어간 군부대는 활주로가 펼쳐져 있었고, 한쪽 옆 격납고엔 헬리콥터 여러 대가 늘어서 있었다. 알렉산더는 우리를 헬리콥터 앞으로 오라고 하더니 문을 열고, 아들 지훈이에게 조종석에 타라고 했다. 그런 후 계속해서 "포타 포타"라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나에게 지훈이 사진을 찍어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운항 계획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운항 계획이 있으면 다 같이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 위로 날아 오를 텐데, 그러지 못해서 계속 많이 아쉬워했다.

시베리아 횡단도로에서. /시민기자 최정환

알렉산더의 직업은 이곳 비행장에서 헬리콥터를 고치는 기술자라고 말했다. 격납고 안에 있던 여러 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해주며 인사를 시켜 줬다.

단지 한국에서 온 여행객일 뿐인 우리에게 너무나 친절히 대해준 알렉산더. 선한 그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고 놀랐다.

한국은 옆집 이웃도 잘 모르고 살아오는 환경인데 이곳 러시아에 온 지 며칠 동안 일어난 현지인들의 관심과 환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알렉산더랑 명함을 교환하고 한국에 오게 되면 꼭 내게 들르라고 말해 주었다.

아들에게 우리나라와 다른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우리가 운이 좋은 건지 지나는 곳마다 좋은 인연이 계속 연결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새로이 알게 된 좋은 친구 알렉산더의 배웅을 받으며 세계 최대의 담수호 바이칼 호수를 향해 다시 달릴 시간이다. /시민기자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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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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