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 설립 가로막는 정당법
다양한 목소리 담을 통로 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침묵한 그녀들이 '엄마'라는 표현을 쓰며 정치에 입문한다. 정치인이 되겠다고 '엄마'를 판다 … 부끄러움이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은 사람들이 참 많다."

학교 무상급식 중단 사태에 맞서 양산지역에서 학부모들과 함께 활동했던 허문화 씨가 며칠 전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광장에 모여 새로운 세상을 밝힌 부모들도 있었다고 자위해보지만 갈 길은 멀다.

경남도의회는 지난 16일 도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만든 안을 대폭 수정해 통과시켰다. 2인 선거구 38→64곳, 3인 선거구 32→28곳, 4인 선거구 14→4곳. 3·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갰다. 선거구 쪼개기는 경남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부산시의회는 4인 선거구 7곳을 2인 선거구 14곳으로 바꿨다. 자유한국당이 득세한 곳만 그런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더 많은 경기도의회는 기존 4인 선거구 2곳을 아예 없앴다.

핵심은 기득권 지키기다. 쪼개야 거대정당 소속 출마자들이 더 많이 당선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소수의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고,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다. 한 선거구에서 득표 3·4위까지 의원을 뽑으면 소수정당이나 무소속도 의회에 진출할 확률이 높다. 그만큼 선거와 제도권 정치를 통한 주민자치 통로가 넓어진다.

그런데 말이다. 기득권이 독식하는 거대정당 체제만 지역정치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다. 주민이 지역에서 정치에 참여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정당을 만들어 직접정치를 하기는 더 어렵다. 헌법은 '정당의 설립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지역정당은 불가하다. 정당법에 따라 서울당, 전국당만 허용한다. 중앙당을 서울에 둬야 하고, 5개 시·도당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 없는 정당체제에서 지역정치, 풀뿌리 민주주의는 허상이다. 지역정치가 중앙에 예속돼 있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지역정당을 만들 수 있게 길을 열자는 목소리는 작다. 중앙집권 체제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다양성이 필요한 시대다. 획일적인 정책보다는 지역에 맞는 목소리를 정책화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 더구나 지방소멸 위기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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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정치에 참여하고,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지역정당끼리 연대한다면 지금처럼 소수를 묵살하는 정치체제에 균열은 낼 수 있을 것이다. 경남에는 한때 무상급식 중단에 따른 광풍이 불었었다. 도내 전역에서 분개한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 도지사 소환운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가칭 '엄마당'을 만들고도 남을 지역정치의 힘을 보여줬다.

허문화 씨가 말하듯이 "아이들이 먹는 물 문제도 침묵하고, 핵발전소 위험성, 방사능급식, GMO(유전자변형식품)급식도 나 몰라라"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나선 엄마들은 준비가 돼 있다. 그래도 우리 동네 엄마당은 안 된다고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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