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의원이 절대다수인 경남도의회가 도에서 올라온 기초의원선거구 획정안을 누더기로 만드는 결정을 내려 말썽이다. 원안에는 중선구제의 취지를 살려 4명을 뽑는 선거구를 14곳으로 대폭 늘렸으나 도의회는 4곳만 남기고 10곳을 2인 선거구로 다시 쪼개는 바람에 전체선거구는 종전보다 더 편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유한국당 도의원들이 이처럼 여론과는 상반되는 공세를 취한 속내는 뻔하다. 군소정당의 후보들을 배제해 지금처럼 특정 정당이 계속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러 정치세력이 의회로 들어와 다양한 여론을 보장하겠다던 중선거구제의 시대적 가치는 헌신짝이 되고 말았다.

이런 의문이 생긴다. 도선거구획정위원회가 수개월 동안 낮밤을 잊은 채 공들여 성안한 획정안을 거의 백지화 수준으로 무시해버린 도의회의 처사는 의회만능주의 소산물인가 아니면 태생적 권한행위에 속하는 것인가. 견해는 다를 수 있겠지만 보편적 관점으로 백보 양보해서 후자 쪽에 점수를 후하게 준다 해도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공직선거법이 시사하는 법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선거구획정 주체의 고유권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도 좋을 권리가 과연 의회에 주어져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게 한다. 이럴진대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꼭 도가 관장할 합당한 이유가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의회가 직접 역할을 떠안아 조사와 성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 일정을 소화하는 편이 덜 낭비적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의원들 자신들이 더 잘 안다.

여론을 의식했음인지 한국당 의원들은 임시회 전날 저녁 미리 의사당에 나와 수정안 작성과 통과에 대비한 집단행동을 위한 사전준비까지 했음이 드러났다. 머릿수로 물리력을 앞세우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일 뿐만 아니라 의회민주주의와는 거꾸로 가는 잘못된 선택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는 다수의 횡포로 간주해 틀리지 않을 이번 사태를 등 떠밀려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도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최소한의 권위를 담보할 모든 자구적 수단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조례 공포를 거부하고 재의를 요구하는 것으로 유권자 정의를 대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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