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윤세주 등 의열단 8명 밀양 태생
성폭행·송전탑·화재참사 의열정신 무색

영화 <암살>도 봤건만, 약산 김원봉 장군의 의열 정신은 그동안 내게 깊숙이 파고들지 못했었다. 그러나 밀양 지역을 담당면서부터 자주 해천을 거닐게 됐고, 지난 7일 의열기념관 개관 때 김원봉 장군 여동생 김학봉 할머니를 직접 만나게 되자 타임머신을 타고 일제강점기 태항산(중국)으로 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또 이틀 뒤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최필숙 부소장의 '의열 정신' 강의는 밀양이란 작은 도시를 다시 꼼꼼히 되새기게 하는 단초가 됐다.

요 며칠 동안 밀양과 관련해 인상 깊게 다가온 단어는 '의열'이었지만 연이어 떠오르는 단어는 '모순'이었다. 의열단 관련자 17명 중 의열단 단장 김원봉을 비롯해 무려 8명이 밀양 태생이다. 밀양 내이동 해천은 김원봉과 윤세주가 멱을 감던 하천이고, 해천 주변에 김원봉과 윤세주 생가 터가 있다. 최필숙 부소장은 '의열은 의로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그런 의열 정신을 바로 알고 계승해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밀양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열 역사를 가진 밀양의 현재 모습은 모순 덩어리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연극인을 키워내고 문화 불모지인 밀양을 이슈화했던 밀양연극촌에서 이뤄진 성폭행 사건은 의열 도시인 밀양의 낯을 한없이 깎아내렸다. 연극촌을 운영했던 이윤택 전 이사장은 밀양 태생이 아니지만, 하용부 전 촌장은 밀양인이고 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였기에 그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은 부끄럽고 힘겹다. 김원봉 장군은 이들의 행위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밀양 765㎸ 송전탑 사건으로 말미암은 지역민들의 찬반 갈등은 공동체를 파괴시켰고 십수 년이 흐른 지금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전력이 뿌린 송전탑 보상금이 마을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사례도 나타났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설 선물을 받고도 개봉하지 않았다. "우리의 바람은 진실이고 정의다. 우리가 싸워온 그 숱한 거짓과 매수, 분열의 음모를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반대 주민들이 의로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두고 눈총을 보내는 시민도 있다. 윤세주 선생은 송전탑 갈등으로 조각난 마을 공동체를 바라보며 '의열 정신이 뭔지 잊었느냐?'라고 호통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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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명 사상자를 낸 세종병원 화재 참변(1월 26일)도 결과적으로 밀양시 행정과 중소병원 경영 행태에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남게 됐다. 검찰은 지난 15일 세종병원 화재 사고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병원 운영 법인 이사장과 병원 간부, 밀양시 공무원 등 13명과 세종병원 법인을 재판에 넘겼다. 의료 서비스보다 돈 벌기에 치중한 병원 이사장의 욕심, 그 욕심을 눈감아준 공무원들의 행동은 밀양에서 움텄던 의열 정신에 먹칠을 하는 행위다.

'밀양을 의열 도시로 만들자'고 외치는 시민들 목소리가 높다. 김원봉은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밀양 시민이 더욱 의로워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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