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따라 굽이굽이…하천 따라 세월을 품다
앵지밭골서 발원 합포만 이어져
어렵던 시절 빨래·몸 씻던 장소
재개발 여파 기존 풍경 사라져
쇠락했지만 곳곳엔 단정미 넘쳐

불교에서는 중생이 생을 다하면 업에 따라 육도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고 말한다. '윤회' 사상은 자연 섭리와 다름이 없다.

생을 다한 육체가 땅에 묻히면 시간이 지나 비옥한 토지 일부가 되고 또 다른 생명의 근원이 된다. 물의 순환도 마찬가지다.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바다로 향하고, 증발한 바닷물은 비가 되어 높은 곳에서 다시 흐른다. 윤회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 무학산 동쪽 앵지밭골에서 발원한 회원천은 마산 도심을 지나 합포만에 닿는다.

▲ 합포만에서 거슬러 오르다보면 보이는 회원천.

회원천 상류에는 회원2구역 재개발이 한창이다. 한쪽은 높게 벽을 쳐 공사를 벌이고 있다. 맞은편은 허물어진 건물 잔해로 가득하다. 회원천에서 빨래를 하고, 몸을 씻고, 좁은 골목을 오가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13m 높이 느티나무는 아직 자리를 지키고 섰다. 나무 옆으로 비석이 셋 있고, 한 비석은 따로 설명이 붙었다. 글자가 지워져 알아보기 어렵다. 5·16 군사 정변을 공적화한 비석인데, 한 차례 치워진 적이 있다.

지워진 설명문은 오욕의 역사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보존 가치는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결국 재개발이 본격화하면 이 또한 쉬이 사라질 운명이다.

▲ 회산다리 아래에는 점포 이전을 알리는 펼침막 (위)이 붙어있다.

노점상이 하나둘 보인다. 회산다리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아직 자리를 보전한 곳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장소 이전'이라 써 붙였다. 회산다리 풍경도 서서히 옅어진다. 얼마 못 가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회산다리 아래에 전·월세 방문이 덕지덕지 붙었다. 살던 집이 헐려 떠나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집에서 또 다른 추억을 쌓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밀려나면,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우는 양상이 반복된다.

북마산 중앙시장을 지나 용마산 방향으로 가는 길, 풍경이 묘하게 달라진 기분이다.

▲ 수령 500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느티나무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2014년 8월 같은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당시 회원천이 40여 년 만에 콘크리트를 깨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1970년대 회원천 하류 오동동 구간에 마산자유시장(오동동 아케이드)이 있어 2011년까지 온전한 회원천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지난 2009년 하천 정비 사업이 진행됐다. 오동동 아케이드와 복개 주차장은 노후화를 이유로 헐렸다. '하천 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시작된 공사는 생태하천 조성으로 이어졌다.

그땐 생태하천 조성 공사 공정이 60%였던 시점이었다. 회원천을 따라 즐비한 점집이 꽤 인상 깊었다. 지금은 간판을 내린 점집이 많아진 듯하다.

▲ 회원천 상류 지역은 회원2구역 재개발로 인한 각종 건물 잔해가 넘쳐난다.

물의 기운이 쇠약해진 탓이려나, 인구 이동 탓일까. 아니면 점집이라는 것이 시대 흐름과 맞지 않아 자연스레 도태하는 것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그렇게 또 무언가 사라지는 모습이다. 마산자유시장이 있던 구간은 서원곡 유원지에서 내려오는 교방천과 회원천이 만나는 곳이다. 물줄기가 힘이 없고, 곳곳에 마른 땅이 드러난다. 피라미도 한둘 보였었는데, 그마저도 보이질 않는다.

합포만에 닿아 걸었던 길을 음미한다. 가끔은 이렇게 일상을 걸어보면 어떨까 싶다. 오늘 본 일상의 풍경은 내일이면 모습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은 그 순간을 살았던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는 의식이기도 하다.

이날 걸은 거리 3.5㎞. 5797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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