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지만 용서할 줄 아는 원장 이야기
성장통겪는 지금 지위 걸맞은 사랑 필요

일찍 남편과 사별한 안나 씨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 너무 잘 키운 아들을 남에게 떠나보내기 싫어 수도원에 들어가라고 꼬드겼습니다.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의 희생과 정성을 잘 아는 아들 요한은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수도원에 입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삶이 너무 싫었습니다. 자신의 발로 걸어나가면 어머니 실망이 클 것이고, 어떻게 하면 수도원에서 쫓겨날 수 있을까? 궁리를 거듭하였습니다.

어느 날, 수도원 옆 민가에 사는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를 꾀었습니다. 오늘 밤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자기 방으로 놀러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 수도사의 삶에 호기심 가득한 젊은 아가씨가 방으로 놀러 왔습니다.

요한은 수도원장님께 들켜서 쫓겨나면 이 아가씨와 결혼하리라 마음먹고 차 한 잔을 나누며 큰소리로 떠들었습니다. 아가씨도 영문을 모른 채 즐겁게 떠들었습니다.

조용한 수도원이 떠들썩하자 옆방에 기거하던 동료 베드로 수사가 화들짝 놀라서 원장님께 달려갔습니다. "원장님! 요한 방에 여자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원장님이 앞장서고 베드로가 뒤따라 갔습니다. 요한 방 근처에 가자 아가씨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든 상황을 눈치 챈 원장이 멀찍이서 요한을 불렀습니다. "요한아! 아직 안 자느냐?" 방안이 약간 소란스러웠습니다. 아무리 들키기를 작정한 요한이지만, 막상 원장님 목소리가 들리니 놀란 가슴에 아가씨를 침대 밑으로 숨겼습니다.

문이 반쯤 열리고 원장님이 안을 슬쩍 들여다보자 숨어 있는 아가씨가 보였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수도복 자락을 넓게 펴고 문 앞을 가로막은 채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뭐가 보이느냐?" 베드로는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차마 원장님께 비키시라는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원장님이 베드로에게 "이제 가서 자거라" 하고는 요한에게도 자라고 이르고 돌아갔습니다.

요한은 아가씨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밤새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엄격하신 원장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도 왜 모른 척하셨을까?' 요한은 깨달았습니다. 엄격하지만 용서하는 원장님의 사랑, 바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 사랑이라는 것을….

백남해.jpg

사랑은 여러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동료 수사 베드로의 패기 넘치는 정의 실천을 통한 사랑이 있고, 원장님처럼 엄격하지만 꼭 필요한 때 잘못을 눈감아 주는 용서의 사랑이 있습니다. 누가 더 낫고 못하고는 없습니다. 자신의 지위나 맡은 소임에 따라 사랑의 모습은 다르게 나타날 뿐입니다. 큰 조직을 돌보는 원장님이 너무 정의만 세우겠다고 하면 그 조직이 위태롭고, 젊은 수사가 너무 너그럽게만 산다면 조직이 단단해지지를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로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자리에 걸맞은 사랑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