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욕망 뒤엉킨 '학교'경쟁 대신 아이 '꿈'채워야
자식에게 부모가 바라는 일을 '세뇌'하지 마세요
조마조마한 마음 유전처럼 자녀에게 전염됩니다
친구를 배려하며 함께 기뻐하는 학교로 만듭시다
학생 스스로 어떤 일이든 책임질 수 있도록 해요

"꽃다발을 건네긴 했지만, 제 아이의 중학교 졸업이 조금도 기쁘지 않아요. 오히려 고등학교 3년간 감내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하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대학엘 가야만 사람 취급을 받으니,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야죠."

지난달 아이의 졸업식장에서 만난 한 학부모의 하소연이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가 공사립과 설립 목적, 건학이념 등을 불문하고 죄다 대학입시에 목을 맨 '입시 학원'이라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팔청춘의 꿈과 끼를 펼칠 공간이기는커녕 오로지 밤낮으로 수험서와 씨름하고 짝꿍과 경쟁해야 하는 살벌한 전쟁터다.

학기가 막 시작된 3월 초, 낯선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엾다. 듣자니까, 잔뜩 긴장한 탓에 입학식 이후 일주일도 더 지난 지금까지 화장실을 못 가고 있다는 아이도 있었다. 입학한 날부터 군기 잡듯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는 분위기에 주눅이 든 것이다. 그는 조퇴 후 관장을 위해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학부모이기에 앞서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서, '입시 학원'으로 전락한 고등학교에 소중한 자녀를 보낸 뒤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체념 속에 전전긍긍하는 학부모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 자판 앞에 앉았다. 이 글은 고등학교 신입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현직 교사의 편지다. 자녀와 함께 읽는다면 대단한 용기다.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 투사해선 안돼

우선,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지 말라.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몰라도, 부모가 자신에게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안다. 그걸 자신의 진로희망란에 적어달라고 할 때, 담임교사이기 이전에 그들 부모 또래의 기성세대로서 참담함을 느낀다. '세뇌'란 이를 두고 하는 말 아닌가.

가정에서 자녀에게 줄곧 무엇이 되라고만 했지, 정작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은 결과다. 되레 부모가 기대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재능이 자녀에게서 발견되면 마치 아이의 천직인 것처럼 합리화하기 바쁘다. 대개 그런 일들은 뛰어난 성적을 요구하는 전문직으로, 주야장천 공부를 다그치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야 의심할 바 없지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라는 부모가 자녀에게 건네는 충고는 '번역'이 필요하다. 솔직히, '네 덕 좀 보자'는 뜻 아닌가.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는다 한들 '부모의 욕망을 욕망해온' 아이가 장차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단언컨대, 없다.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서울도시과학기술고에서 열린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가 소망편지를 타임 캡슐에 넣기 전 자신의 미래 희망에 대한 편지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둘째, 절대 불안해하지 말라. 불안해하는 마음은 자녀에게 유전처럼 그대로 전염된다. 온존한 학벌 구조 속에서 우리 교육은 끊임없이 불안을 조장하고, 확대 재생산된 불안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몸집을 키워왔다.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에도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가 십중팔구 불안 때문이라고 하소연한다.

'이웃집 아이'와 줄곧 비교해가며 자녀를 학원으로 독서실로 조리돌리는 행위는, 거칠게 말해서, 불안으로 인한 정신 질환이다. 늦은 밤 졸려서 침대에 누웠는데도 친구들의 공부하는 모습이 떠올라 쉽게 잠들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숱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밑도 끝도 없는 불안으로 아이들의 심성은 피폐해져만 간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솔선수범은 최상의 교육

셋째,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도록 노력하라. 이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사에게 더욱 해당하는 경구일지도 모르겠다. 교육의 본질이 감화라면, 교육자는 피교육자 앞에서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는 부모와 교사의 뒷모습을 통해 배운다는 선현의 가르침을 곱씹어봐야 한다.

퇴근해 집에 들어서자마자 TV 리모컨을 찾는 부모 아래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나오기 힘들고, 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부모 아래에서 자녀가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자신은 소파에 기대 TV 드라마를 보면서 자녀더러는 방에 들어가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건 부모로서 민망한 일이며 자칫 반감만 키울 뿐이다.

기억해야 할 건, 오로지 내 아이에게만 매몰될 때, 학교는 '괴물'이 된다는 점이다. 학교는 내 아이 혼자만 생활하고 배우는 '과외 교실'이 아니다. 가정과 더불어 가장 기초적인 사회화 기관으로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가운데 아이에서 성인으로, 학생에서 시민으로 성장해가는 곳이다.

자녀가 친구들과 다툼이 일거나 나쁜 짓에 휘말리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당신의 자녀의 편에서 사건을 이해하고 따지려 들기 일쑤다. 학교의 조사와 처분을 믿고 기다리기는커녕 온갖 인맥을 동원해 개입하려고만 한다. 설령 명명백백한 가해자라고 해도, 본디 착한 아이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선처를 호소한다.

모둠 활동 때문에 자녀가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었다며 항의하는가 하면, 공부 못하는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자녀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학부모도 있다. 담임교사와 상담하면서 특정한 아이를 험담하기도 하고, 자리와 모둠을 바꿔달라고 통사정하는 경우도 만났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일진대, 그런 아이의 학교생활이 즐겁고 원만할 리가 없다.

◇처음부터 좋은 학교는 없다

처음부터 좋은 학교란 없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친구들을 위해서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기꺼이 할애할 줄 알고, 친구들의 성공을 서로 함께 기뻐하는 곳이야말로 좋은 학교다. 오로지 명문대를 향해 아이들 개개인을 밑도 끝도 없는 경쟁 속에 밀어 넣는 곳이라면 차마 학교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이기적인 욕망의 아수라장일 뿐이다.

사족 하나.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면 처음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받는 세대다. 하지만 정부가 대학입시 개편안을 1년 유예하는 바람에, '새' 교육과정으로 배우고, '헌' 교육과정으로 대학입시를 치르게 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선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캐묻는 학부모들이 많고, 학년 초 가정통신문도 대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알아서 나쁠 건 없지만, 지나치게 관심을 두진 말라고 외람되이 충고한다. 교사보다는 학생,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의 교육과정이라는 개정안의 취지와 이어 조만간 시행될 고교학점제의 방식 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리는 게 전부다.

학부모가 자녀 대신 대학을 갈 게 아니라면, 적어도 '입시는 내가 챙길 테니, 너는 오로지 공부만 하라'는 식의 태도는 버려야 한다. 그러다 자녀가 대학에 가서까지도 학부모가 수강신청을 대신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녀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발 성인 문턱에 다가선 그들에게 온전히 맡겨 달라.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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