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희의 드롭 더 비트] (4화) 나와 같은지
사람들은 외로움을 없애고자 술을 먹거나 수다를 떨지만 한 번쯤 노래 듣는 것도 좋아
힙합 MC 일리닛의 '나와 …'어쿠스틱한 분위기와 가사 지친 마음 차분히 달래줘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했던가요. 한 분야를 집중해 파고들면 자기 나름으로 이치를 깨치게 됩니다. 여기에 재미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요. 일반인 중에도 재밌게 격물치지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개인 취미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개인적인 일상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요.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색다른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김설희 객원기자는 힙합이야기 <드롭 더 비트>를 들려드리는데요. '드롭 더 비트( Drop the beat)'는 힙합 음악에서 래퍼들이 랩을 시작하기 전에 쿵짝쿵짝 하는 '비트를 달라'는 뜻으로, 일종의 유행어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격물치지도 열렬히 환영합니다. 어느 분야든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분은 언제든 문정민 기자(minss@idomin.com)에게 연락주십시오.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철없이 뛰어놀던 학창시절에는 노는 데 바빠서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어쩌다가 친구들과 싸워서 외톨이가 되었을 때 외롭다고 느껴봤지만 그것이 올바른 외로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생각했던 '진짜 외로움'은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하면서 이젤 앞에 앉았을 때 불현듯 찾아왔다. 하얀 캔버스가 시간이 지나도 색채로 물들지 않고, 어쩐지 창작의지가 평소와 같지 않을 때가 있다. 흘러가는 시간에 마냥 생각을 흘려보내면, 어느덧 밤이 깊어지기 마련이었다. 상념에 젖어 라디오를 틀면 조용한 음악이 나지막하게 깔렸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DJ의 차분한 목소리가 적막한 방안을 채우면, 뭔지 모를 쓸쓸함과 허전함이 나도 모르게 마음에서 묻어나왔다.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대학생활 탓인지 몰라도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그런 감정을 느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다. 아마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몸부림치는 게 우리네 삶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사람은 '외로움'이란 감정을 이겨내려 술을 마시며 기분을 달래거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혹은 오랫동안 머문 공간을 떠나 여행을 가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상하게 술을 마셔도 수다를 떨어도 그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그 순간의 없어지는 감정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외롭고 힘든 감정이 더 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 수다를 많이 떨었던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먼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도 외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수많은 장치와 아이디어, 그리고 예술이 있다. 그중에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술 약속을 잡으며 걸음을 하지 않아도, 음악을 들음으로써 외로운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상당수 음악가도 외로워서 음악을 했다고 할 정도로 외로움과 음악은 연결되어 있다. 또 음악가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이 공감하고 더 많이 위로가 된다. 그렇지만, 정말 의지할 곳이 없어 외로울 때면 그 어떤 '응원가'라도 마음을 움직일 순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되었고 지금도 이 노래를 벗 삼아 마음을 삼키곤 한다. 아무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한 번쯤 이 노래를 듣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노래는 일리닛의 '나와 같은지'라는 노래다.

일리닛은 대한민국의 힙합 MC다. 예명인 illinit은 '끝내주는, 죽이는'의 뜻이 있는 미국 속어 Killin' it에서 따왔다. '나와 같은지'라는 노래는 인간관계 때문에 하게 되는 고민이 주제인 곡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인간관계에 대한 외로움을 느껴봤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힙합이지만 어쿠스틱한 분위기로 차분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위로하는 듯한 가사는 나의 마음을 긁어준다. "아무렇지 않아, 난 정말 괜찮아, 몸에 밴 거짓말 / 아프다고 하면, 화난다고 하면, 혼자 될까 겁이 나"라고 말해주는 후렴은 외로운 감정의 마지막을 후려친다. 어쩌면, 외로움을 이겨내는 건 그 외로움의 절정을 맛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노래엔 "세월이 흘러가며 먹는 건, 나이만이 아냐 / 나도 몰래 먹는 겁, 나도 많이 나약해졌구나 느낄 때 자주 있네 / 또 억지로 웃고 이제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걸 / 남의 작은 말 한마디, 상처인데 말 안 하지 / 고민의 끈 잡느라 밤마다 잠은 달아나지 / 상처는 열등감과 결합해 / 내 이해심과 서투르게 경합해 / 분노로 숙성되지 인내심이 떠날 때 / 뒤편에만 서려 하는 이도 지켜내려 노력해 / 나 이번에도 넘어갈게 / 아마 다음번에도 같겠지 / 쓴맛 혼자 삼키고 또 웃어주고 말겠지. 별걸 다 본 나의 두 눈과, 예전처럼 계속 가려운 내 두 귀가, 원인 제공자에게 화나게 만들지만 / 똑같아지기 싫어 이를 물어 입 다물려고 애쓰지 / 난 아프진 않아, 쓰긴 하다, 인간 / 이제 느끼기가 싫은 감정, 실망"의 노랫말이 있다.

일상을 지내면서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닥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상황에 마주치면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언젠가 우연히 버스에서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실제로 집까지 울면서 달렸다. 그 뒤 방안에서 노래를 틀어놓으면 마치 마술에 걸린 듯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후로 종종 외로움을 느낄 때면 이 노래를 듣는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다시는 혼자가 아니게 된다. 그리고 한 번 되뇐다. "모든 게 잘될 거야"라고. <끝> /객원기자 김설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