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만연한 권력 이용 성범죄 가늠케 해
남성들 '펜스룰' 본말전도 '위드유' 절실

임희경 경위가 지난 12일 업무에 복귀했다. 그가 누구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임 경위는 김해서부경찰서 경찰이다. 후배 여성 경찰관이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하자 신고를 도왔다가 음해 등 2차 피해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임 경위는 지난 1월 8일 김해서부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성범죄·갑질 없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서. 직장 내 성희롱은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 내 상하관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의 본질인 권력형 성폭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같은 달 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있었다. 미투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검사·시인·연극인·영화배우·정치인들 이름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가 우리 사회 곳곳에 얼마나 뿌리내리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임 경위 업무 복귀 소식을 접하며 반가운 마음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 만약 미투운동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복귀까지 꽤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경남경찰청이 진상조사에 나서고 지역 시민·여성단체가 힘을 실어줬지만 미투운동 이후 사건 해결이 급물살을 탔다. 임 경위의 직접행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임 경위는 '위드유'(#WithYou·함께하겠다)를 앞서 실천했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한 압력에 직접 맞섰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임 경위에게 응원을 보낸다.

유명인을 상대로 한 미투는 파급력이 큰 만큼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가정이나 학교·직장 등 일상에서는 어떨까? 매일 얼굴을 맞닥뜨리고, 당장 밥벌이에 연연해야 하는 일상에서 미투라고 말할 용기를 내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 압박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내 주변만 봐도 그렇다. 회사 내 20대 여성 후배가 회식자리 등에서 남성 선배로부터 언어 성희롱을 당했다. 전형적인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었다. 후배는 노동조합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인사윤리위원회가 소집됐다. 가해자에게는 징계가 내려졌고, 후배의 2차 피해를 줄이려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후배는 혼자 싸우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라도 가해자와 마주칠까 봐, 다른 동료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숨죽이고 눈치 보며 지냈다고 한다. 피해자인 자신이 벌을 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후배는 결국 회사를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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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으로 남성이 여성을 배제하는 '펜스 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마치 남성이 미투 운동의 피해자인 양 본말을 전도하려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미투는 남성이 표적이 아니다.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고이다. 미투로 불편한 건 여성인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방관자였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다. 심리학 용어에 '방관자 효과'라는 말이 있다. '구경꾼 효과'라고도 한다. 내 주위에서부터 미투와 위드유를 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누구를 욕하랴. 후배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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