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푸는 소리·경운기 소리·말다툼 소리
꽃보다 먼저 온 봄…재미난 농사 시작을

겨우내 잠잠하던 시골 마을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밭에 나와 농사 준비를 하시고, 지나가는 트럭에는 거름포대가 가득 실려 있다. 겨울에는 마을길에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봄이 다가오니 "안녕하세요? 밭 준비하시나 보네요" 하고 인사할 일이 많다.

눈을 감고 서 있으면 포클레인으로 거름 푸는 소리,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 엔진톱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들려오는 할머니들 말다툼 소리도 정겹다. 산골 마을에 봄이 오는 소리다. 농부들은 그렇게 꽃보다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린다.

나도 조금씩 농사일을 시작하고 있다. 가장 먼저 어느 밭에 무얼 심을 것인지 밭 지도를 그렸다. 연작이 안 되는 것, 함께 심으면 좋은 것, 서로 피해서 심어야 하는 것, 작물마다 성격이 다르다. 밭 지도를 그리는 일도 농사의 중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양파와 마늘밭에 풀을 매고, 비가 오기 전에 웃거름을 주었다. 지난해에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고춧대를 뽑아내고, 감자밭에 거름 넣을 준비도 하고 있다. 밭에 나가 흙을 만지며 몸을 움직였더니 나도 모르게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맑고 개운해졌다.

지난해부터 동생 수연이와 이웃 마을에 사는 구륜이와 함께 '청년농부 밭'을 일구고 있다. 산골 마을에서 나고 자라 이제 열일곱 살이 된 구륜이는 아홉 살 때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고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함께 농사를 짓다 보면 한참 농사 선배인 구륜이한테 배울 것이 많다.

지난해에는 구륜이 아버지가 밭을 빌려 주셔서 생강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올해에도 생강 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밭을 옮겨야 했다. 생강이 보기와 다르게 까다로운 작물이라 한 번 심은 밭에는 적어도 삼 년이 지나야 다시 심을 수 있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 집 밭 한쪽을 청년농부 밭으로 쓰려고 한다. 생강을 거두고 나서 '어떤 작물을 심으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밀을 심어보기로 했다. 나랑 수연이는 밀을 심어본 경험이 없지만 구륜이는 아버지와 밀농사를 지어 보았다. 함께 공부하면 밀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우리밀 자급률이 2%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올해부터 우리밀 농사를 꾸준히 짓고 싶다. 우리가 농사지은 밀로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다.

올해에는 바쁜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에 뒷산에 가서 부엽토를 미리 모아 두기로 했다. 집집마다 가족들과 함께 짓는 농사일이 있다 보니, 지난해에는 청년농부 텃밭에 쓸 부엽토까지 하느라 허둥지둥 정신이 없었다. 부엽토는 미생물이 낙엽과 작은 가지들을 분해해서 생긴 흙이다. 산에서 부엽토를 모아다가 밭에 덮어 주면 미생물들이 작물을 잘 자라게 한다. 그리고 멀칭이 되어서 풀은 덜 자라게 해준다. 셋이 모여서 이틀 동안 부엽토를 했다. 말재주가 좋은 수연이와 구륜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말수가 별로 없는 나에게 재잘재잘 이야깃거리가 많은 동생은 함께 일하기 좋은 친구다. 이번 해에도 재미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예슬.jpg

청년농부 밭을 일구어 갈 수 있는 건 이웃 농부님들이 마음을 내어주신 덕분이다. 도울 것은 없는지 때때로 물어보고,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하신다. 농사짓는 청년을 귀하게 여겨 주는 어른들을 만났다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재산이 아닐까 싶다. 시골에는 청년이 필요하지만 낯선 청년을 기쁘게 맞이하는 분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우리 곁에 든든한 어른들이 계신다는 것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드디어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다. 올 한 해도 하루를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농사를 지어야겠다. 지치지 않고 농부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