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금강산·평양·개성 다녀온 자랑
요즘 남북 분위기…조만간 북행길 기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등 방북 특사단이 귀환해 반가운 소식을 전한 그날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지인과 통화하다가 모처럼 북한 얘기를 나눴다. 그와는 금강산 구경을 같이 간 적이 있다. 그는 얘기 도중에 문득 "이러다 조만간 또 금강산 구경 가는 것 아니냐"며 좋아했다. 요즘 남북, 북미관계 분위기를 보면 그런 기대를 가질 만도 싶다.

내가 백두산을 처음 가 본 것은 1993년, 한중수교 이듬해였다. 당시 역사문제연구소 관계자들과 함께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올랐다. 베이징∼선양을 거쳐 간도 용정 땅을 거쳐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러나 민족의 명산 백두산을 보러 간다는 설렘에 다들 지루한 줄도 몰랐다. 중반부까지는 완만한 경사였으나 백두산 자락부터는 가파른 길을 지프로 올랐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천지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금강산 관광은 현대그룹이 1998년 11월 첫 관광을 시작한 직후에 다녀왔다. 그 무렵 김대중 정부의 지원으로 금강산 신계사를 새로 지었는데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에게 취재를 겸해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때는 금강호를 타고 북한의 장전항에 도착해 관광을 시작했다. 특별한 신분이 아닌 일반인들이 북한 땅을 밟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지 싶다. 구룡연 코스의 옥류담의 옥빛 물과 비봉폭포, 구룡폭포, 상팔담을 두루 구경하였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 절경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2003년부터는 금강산 육로관광의 길이 열렸다. 다행히 또 기회가 있어서 이번에는 육로로 갔는데 코스는 전번과 달리 만물상 코스였다. 온정각을 출발해 만물상 입구에서부터 기암괴석이 우리를 반겼다. 귀신 얼굴을 닮았다는 귀면암, 건너편의 삼선암, 여정의 끝은 천선대였다. 수많은 철 계단을 올라 천선대 중턱에 다다르자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유료) 지금도 가끔 그 사진을 보노라면 그때 생각이 난다. 혹자는 중국의 명승지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이 좁은 땅에 그만한 비경을 가진 것은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평양에도 갈 기회가 있었다. 2003년 평양에서 남북역사학자들이 모여 영문 국호 'COREA'를 두고 학술행사를 열었다. 당시 나는 학술담당 기자로서 타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취재차 갔었다. 얘기인즉슨 원래 우리의 영문국호는 'COREA'로 표기했다. 그런데 알파벳 순서에 따라 국호를 배열하는 관례에 따라 'COREA'가 'JAPAN'보다 앞에 놓이게 되자 일제가 알파벳 'C'를 'K'로 바꿨다는 것. 당시 북측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정' 이후 'K'자로 표기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행사를 마치자 반가운 일정이 우릴 기다렸다. 당일치기로 묘향산을 다녀왔는데 오가는 길에 예성강을 벗하였다. 이튿날에는 백두산 관광이었다. 이번에는 북측 지역에서 천지를 볼 생각을 하니 적잖이 흥분되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백두산 삼지연 공항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차로 얼마 가지 않아서 천지 입구에 도착했는데 아쉽게도 그날 일기가 좋지 않아 천지까지는 가지 못했다. 대신 비행기에서 백두산 전경을 구경하는 특별한 재미를 느꼈다.

2008년에는 언론계 인사들과 함께 개성관광도 다녀왔다. 당일치기로 다녀왔지만 가볼 데는 다 가봤다. '송도 3절'의 하나인 박연폭포, 정몽주의 선죽교, 고려 천 년의 숨결이 깃든 고려박물관, 그리고 개성시내 한옥마을 민속식당에서 '13첩 반상' 점심도 했다. 반찬이야 이 땅 어디서도 나는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등이었지만 기분은 달랐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정몽주 선생의 숭양서원 구경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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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구경갔다온 자랑만 실컷 늘어놓은 셈이 됐다. 그런데 이런 자랑은 좀 해야 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필자 같은 마음을 가진 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2010년 '5·24 조치'로 막힌 북행길이 조만간 열리길 기대한다. 기회가 되면 전에 갔던 그 길을 또다시 가보고 싶다. 사람과 물자가 남북을 오가면 그게 바로 통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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