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 (1) 조선의 역사를 지킨 370일의 기록
임란 중에 보호한 조선왕조실록
위험 무릅쓴 손홍록·안의 덕분
조상 업적·생활 파악할 수 있어
기록, 권리·이익 보호하는 매개
보존·활용 등 관리 중요성 확산
"도민도 함께 인식 공유하기를"

공공기관에서는 매일 수많은 기록이 생산된다. 하지만 인력, 예산, 시설, 무관심 등 많은 문제로 기록의 체계적인 관리가 힘든 상황이다. 경상남도기록원에서 기록정책을 담당하는 전가희 기록연구사는 기록과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도민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경남도기록원은 경남도 및 시군 등의 공공기록과 민간기록을 수집·보존·활용하기 위해 건립됐다. 지난해 12월 22일 준공돼 현재 본격 운영을 앞두고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

적은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산중을 울리는 함성 소리와 횃불은 여기저기 켜졌을 것이다. 정읍 내장산 기슭, 임진왜란 중 유일하게 남은 조선왕조실록을 피신·보관 중이던 선비 손홍록과 안의, 새벽 이슬과 희미해져 가는 별을 바라보며 불철주야 당직을 서던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하는 임금을 버리고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백성들은 왜군에게 죽임을 당했던 때, 종이에 불과한 오래된 낡은 책을 보존하기 위해 370일 동안 그들은 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지난해 6월 3일 조선왕조실록을 습기와 충해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바람에 말리는 '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 행사'가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 일대에서 열렸다. 포쇄는 충해를 막을 수 있도록 습기가 밴 책을 말리는 것을 말한다. /연합뉴스

공을 얻고자 함이었을까?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역사에 대한 수호의지였나?

전쟁 후, 실록을 지킨 공으로 벼슬을 내리던 선조의 명을 끝내 받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히 개인의 이익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내고자 했던 기록. 나는 가끔 산짐승이 울고 적들의 외침 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 홀로 무겁게 내려앉은 실록을 바라보던 그들을 떠올리곤 한다. 먹을 것도 없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아내도 자식도 어미도 아닌 기록을 지킨 그들의 의기는 무엇이었을까?

기록은 그 중요성을 말하기 전에도 드라마 영화 등 무수한 문화콘텐츠 등으로 직·간접적으로 활용되지만 정작 기록을 생산·이용하는 공무원과 도민들은 기록·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기록이 중요하다고 쉽게 말하는 건, 개인으로는 학습 효과의 기억 유실 방지를 위해, 국가적으로는 역사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한 추상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공기만큼 당연하게 존재하는 기록을 '관리'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록 중 무엇을 남길 것인지, 남긴 기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공공기관에서 생산되는 비현용 기록물(업무상 활용되지는 않지만 기록관이나 기록 관리기관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있거나 활용되는 기록)은 기록관으로 이관, 보존된다. 사진은 도내 기록관에서 기록연구사가 기록물을 관리하는 모습. /시민기자 전가희

다행히 1999년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이 법률의 연장선으로 700여 개 공공기관에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배치됐다. 대학에서는 대학원에 기록학 과정이 개설되었다. 기록관리는 점차 그 중요성이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 그 효과는 물을 손으로 움켜쥐면 물이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잡아도 잡히지 않을뿐더러 결과물을 담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기록과 기록관리란 과연 무엇인가?

법에서 정의하는 '기록'이란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도서·대장·카드·도면·시청각물·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와 행정박물(行政博物)을 말하며, '기록관리'란 기록물의 생산·분류·정리·이관(移管)·수집·평가·폐기·보존·공개·활용 및 이에 부수되는 모든 업무를 말한다.

즉 공무원들이 매일의 업무에서 자연스럽게 생산·등록한 문서는 이 법의 범주에 모두 속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기록은 정리 절차를 거쳐 공공기관 내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록관'으로 이관된다. 이관된 기록물은 기록관에서 기록연구사들의 손길을 거쳐 선별·평가(관리해야 할 기록) 과정을 거쳐 30년 이상 기록은 관할 영구기록물관리기관(경남의 경우, 경남기록원)으로 이관되고 최종적으로 보존·활용된다. 이는 공공기관에 국한된 기록물의 정의이며 이 외에도 도민의 생활을 증거 할 수 있는 '도민기록'도 있다.

이렇게 이관·보존된 기록은 결국 경상남도와 도민의 권리증진을 위해 활용된다. 쉽게 생각하면 도민들이 궁금해하는 도정의 정책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의 대상물이며 도정에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정보의 객체물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부터 공공기관에서 '조상 땅 찾기'라는 업무를 통해 시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홍보·서비스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을 통해 조상 땅을 찾는 소득을 얻게 되었다. 단순히 정보를 청구하여 정보를 얻는 수동적 서비스를 벗어나 청구 전 서비스를 제공, 시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준 결과이다. 이런 서비스는 공공기관의 기록 보존과 효율적 활용에 깊은 관계가 있다.

보유한 기록물이 없다면 활용을 할 수 없고, 있더라도 관리되지 않는다면 서비스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민원포털 민원24(http://www.minwon.go.kr/) '조상 땅 찾기' 안내 화면 캡처.

추상적으로 기록은 개인, 조직, 공동체의 기억을 위한 보고이며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매개라고 말하고들 한다. 이 물음에 우리는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또 한번 던지기도 한다. 기록이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이고 그 의미 또한 추상적으로 나열되었기에 일상에서 기록, 기록관리와 관련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숨겨진 이면의 내용을 시민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산되어야 할 기록을 생산하고 보존하여야 할 기록을 선별하며 활용하여야 할 기록을 서비스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 체계가 결국 시민 생활의 기층을 이루는 일 중 하나라는 것을 기록인들만의 인식을 넘어 모두 함께 공유되길 희망한다.

370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전란 중 위험을 무릅쓰고 실록을 보호한 선비 손홍록과 안의 덕분에 지금 우리는 조선건국, 세종대왕 등 왕들의 공·사적인 생활, 한글창제, 측우기 발명 등 위대한 우리 조상의 업적을 외우지 않아도 기억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나아가 세계에서 4번째로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으니, 이는 기록을 쓰고 관리한 사람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손홍록, 안의,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기록이 지금 각 공공기관 등에서 보존·관리되고 있다. 내가 오늘 정성스럽게 '관리'한 이 기록이 훗날 역사의 한 장을 여는 귀중한 유산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춘추관과 지방 사고에 분산·보관하였던 실록은 임진왜란의 발발로 성주, 충주, 춘추관 사고가 차례로 소실되면서 사라졌다. 다만 전주사고 실록만이 안의, 손홍록, 오희길 등 민·관의 노력으로 보존되었다. 이들 중 손흥록과 안의는 370일 동안 실록을 지키기 위해 숙직을 섰고 그 내용이 <수직상체일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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