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안다는 자들 나라 맘대로 주물러
처음의 순수·진실로 재시작해야 희망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아는 것을 버리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서에서 인간의 타락은 선악을 아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난 다음 눈이 밝아져서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나뭇잎을 엮어 앞을 가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로 시작하는 전도서에서도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도 사람들이 여전히 아는 것만 쫓아가려고 한다면 평화는 요원할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지식정보사회라고 하지만 실은 지식이 하나님이 되어버렸고, 지식의 사유화를 조직적으로 획책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정의나 평화가 아니라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내가 얻은 지식이라고 해서 그것이 내 것인가?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이고, 영원한 것인가? 물론 내가 알았기 때문에 내 것인지는 몰라도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신의 것을 빌려 온 것이지 내 것이 아니고,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정한 이치라면 나는 손님으로 왔다가 손님으로 갈 뿐이다. 돈, 명예, 권력과 마찬가지로 지식도 내가 사는 동안 잠시 이용할 뿐이지 이것을 내 것으로 독점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주인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활용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행복할 길은 사유화는 최소화하고, 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옛말에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나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등골이 빠지게 뒷바라지한 것은 많이 아는 자가 돈도 권력도 명예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모르는 것이 원죄와 같은 부끄러움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화근이고, 모르는 것도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많이 안다는 자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나라까지도 들었다 놨다 하지만 이 나라를 지켜온 굽은 나무들이 누구였는가? 노자는 도덕경 17장에서 최상의 지도자는 백성이 그가 누구인지를 잘 모른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는 것이 도가 아니라는 것이고, 이것은 아는 것이 불신과 다툼, 무질서의 근원이라면 모르는 것이 믿음이고 평화이고 질서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공명탁.jpg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할지 몰라도 핵심은 이제 봄이 왔으니 안다고 하는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맨 처음, 순수, 진실한 것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인데 이것이 오늘 우리 시대의 구원과 희망이라는 것이다. 아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행복인 세상을 위해 이번 봄에는 소위 안다는 자들은 제발 좀 잠잠하고, 뭐가 뭔지를 모르겠다고 하는 자들은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