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의사 안중에 없는 권력집단 실험
권력자의 가학행위에 대한 저항이 '미투'

우리 동네 김씨 할아버지는 최근 며칠 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가슴앓이를 했다. 몇 년 전 이사 온 직후부터 동네 경로당에 나가셨고, 그곳에서 비슷한 연배 노인들과 사귀었다. 김씨 할아버지는 경로당에서 형님 대접을 받고 싶어서, 자신의 나이를 세 살 높여서 소개했다. 그러곤 줄곧 세 살 높인 나이로 대접받았다. 김씨 할아버지는 올해 팔순을 맞았다. 자녀는 팔순잔치를 계획하고 있고, 경로당 할아버지들도 초대할 눈치다. 팔순잔치를 하면 나이를 속인 것이 들통날 수밖에 없다. 고민 끝에 결국 김씨 할아버지는 팔순잔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나이는 벼슬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고 힘의 우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서로 나이를 따져서 권력의 우열을 정한다. '형님대접'이라는 표현까지 있다. 사람은 누구나 권력욕을 갖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없던 권력이 갑자기 생기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2006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권력과 역지사지 능력 사이의 관계에 대해 실험을 했다. 대학생 57명을 높은 권력 집단과 낮은 권력 집단으로 나누었다. 높은 권력집단 학생들은 과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권력을 휘둘렀던 경험을 떠올린 후, 그 경험을 글로 썼다. 반대로 낮은 권력집단 학생들은 자신이 누군가의 권력 아래에 놓였을 때 경험을 떠올린 후, 그 경험을 글로 썼다. 이후 모두에게 자기 이마에 펜으로 대문자 'E'를 쓰도록 했다. 높은 권력집단 학생들 중 33%의 학생들이 대문자 'E'를 자기 앞에 선 사람이 봤을 때 거울에 비쳐서 뒤집혀 보이는 이미지로 이마에 썼다. 그러나 낮은 권력집단 학생들 중 12%의 학생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썼다. 나머지 학생들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대문자 'E'가 바로 보이도록 이마에 썼다. 두 집단 간에는 거의 세 배 차이가 난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의 뇌가 권력과 관련된 아주 사소한 양의 기억에 의해 자극을 받을 때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높은 권력은 우리를 보다 자기중심적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을 떨어뜨린다.

권력에 따른 심리적인 변화에 대해 또 다른 실험이 있다.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너대니얼 패스트 교수는 38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애덤 갈린스키 교수와 유사한 방법으로 권력 상황을 생각하게 했다.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주사위를 던져서 주사위의 숫자를 맞히면 돈을 주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주사위를 직접 던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주사위를 대신 던지게 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했다. 어차피 누가 던지더라도 주사위의 숫자를 맞힐 확률은 6분의 1이다. 높은 권력집단 학생들 모두 주사위를 자신이 직접 던지려고 했다. 그런데 낮은 권력 집단 학생들 중 58%의 학생들만 자신이 주사위를 던지는 것을 선택했다. 높은 권력 집단 학생들은 주사위의 결과를 어느 정도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권력을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다.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권력에 관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권력자의 관점을 가지게 할 수 있다면, 오랜 기간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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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상대방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높은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을 성폭행한 '미투' 가해자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상대방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었으며, 상대방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비정상적인 심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 '미투 운동'은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보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가하는 가학행위에 대한 저항이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단순히 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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