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올려 난방하지 않고 아궁이 활용
에너지 의존 탈피 '몸에너지' 사용 늘려야

경칩이 지나고 봄날이 본격화되었다. 어찌 개구리만 기지개를 켜겠는가.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없이 사는 사람들도 움츠렸던 어깨를 털고 활기를 되찾는다. 지난겨울은 추위가 유난히 심해서 난방비가 많이 들었다고들 하는데 가만히 돌이켜보니 우리 집 난방비는 거의 제로(0)에 가까웠다. 다들 놀란다. 강추위가 와도 제로 난방비엔 영향이 없으니.

기후변화로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의 평균기온 상승은 지구 평균치를 웃돌지만 온난화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한반도는 예년보다 더 추웠다. 그래서 동파도 많았고 동해를 입은 과수들도 많았으니 난방비 역시 많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집 난방비가 제로에 가까웠던 것은 인공적인 시설난방 장치가 없었던데 있다고 할 것이다. 보일러가 없다. 전기장판도 안 쓴다. 대신 아궁이에 불을 때 방을 데운다. 그래서 손가락 하나 까닥해서 스위치만 건드리면 난방이 되는 게 아니고 몸 노동이 필요하다. 나무를 해 와야 하고 톱으로 자르는 것은 물론 도끼로 패야 하며 오랜 외출에서 돌아온 날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두세 시간 기다려야 방바닥에 온기가 오른다. 그동안에는 뭘 하겠는가? 별수 없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손발을 비비며 몸에 열기를 만든다.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지냈던 친구는 이를 두고 '참으로 신성한 일용할 노동'이라고 찬탄을 했다. 굳이 신성한 노동 어쩌고 할 것까지야 없지만 따듯한 하룻밤을 위해 내 몸을 노동에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기름도 사고 전기료도 치르는 간접노동과는 다르다. 직접노동은 통신비나 오가는 교통비, 행정사무비 등 기회비용이 덜 들고 시간은 많이 걸리며 노동의 종류가 엄청 많다. 기계시스템노동이 아니고 직접창조노동이다. 보일러가 없다 보니 외출할 때도 조절기를 '외출' 모드로 해서 기름이나 가스를 최소치로 소비해야 하는 일도 없다. 얼어 터질 난방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설비나 시설보수비가 안 드는 것은 물론이다. 구들은 한번 잘 놓으면 수십 년은 끄떡없다. 교체해야 할 부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울창한 숲에는 산림청에서 간벌작업하고 남겨 둔 폐목들이 즐비하다. 미리 나무를 해서 말리고 다듬어 놓는 준비가 필요할 뿐이다. 방은 두 평 반 남짓 되고 천장은 일어서서 손을 뻗으면 닿는 정도로 낮다. 여기다 한지 벽지를 두 겹 발랐고 한지 창을 이중으로 달았으니 열손실도 없다.

3·1혁명 99주년을 맞아 '3·1민회 조직위원회'에서 새독립선언문 작성 공모를 하기에 '에너지 자립' 분야에 응모해서 당첨되었다. 응모 원고에서 나는 사람을 일컬어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라거나 '생각'하는 존재라는 여러 규정이 있는데 현대문명은 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에너지 인간'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진단한 뒤에 인간들의 에너지 이용이 지나쳐서 에너지 종속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연은 파괴되고 인간 종 고유의 직관과 예지, 감응력과 교감력은 마비되어 에너지 없이는 한순간에 하등동물로 전락할 위기에 있다는 주장도 했다. 사실 대규모 정전이나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자생력은 제로에 가깝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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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핵발전소)을 해체하고 화석에너지를 줄여야 하는 것은 물론 신재생에너지의 자연파괴와 지역분쟁도 도외시할 수 없다. 근본 처방은 에너지에 의존된 삶을 자연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내가 말한 '에너지 자립'은 우리나라에서 쓰는 에너지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내자는 게 아니라 아예 '에너지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쓰면 쓸수록 커지는 '몸 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한다. 이는 인간의 신성성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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