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4)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우짜면 허기 때우는 별미, 통영 골목에서야 실감하는 통영

통영 사람이 말하는 통영과 여행자가 말하는 통영은 차이가 크다.

전에 도천동과 서피랑 갔던 길에 택시기사에게 "윤이상, 박경리 선생이 지금 통영 분들 많이 먹여살려주시냐"고 물었다.

"통영에서 관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15%도 안 돼요. 딴 사람들은 오히려 피해만 봐. 관광객들 때문에 물가 비싸지, 차 막히지…. 통영서 택시기사만 27년 했는데 올해처럼 어려울 때가 없어요. 조선소들 문 다 닫는 바람에 사람들 다 빠져 나갔어."

얼마 전 서호동 서호시장에 유일하게 남은 대장간 '산양공작소'를 찾았을 때도 비슷한 면박이 돌아왔다. 소장은 사진을 찍어도 본 척 안 했고, 말을 해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쇠 달구는 소리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 다음 들은 말도 퉁명하긴 했지만….

생선뼈로 우려낸 시락국.

"언론에 소개가 많이 되셨던데 장사가 잘되시냐?" "무슨 장사요? 언론에서 뭘 사가는 것도 아니고. 귀찮기만 하지…." "다른 대장간은 거의 다 문을 닫았더라고요. 어떻게 힘들지 않으세요?" "… …"

하지만, 그는 사람을 내치지 않았다.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퉁명했지만,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도 가타부타 하지 않았다.

10년 전 내가 찾았던 '남영공작소'는 7~8년 전 문을 닫았다는 그의 말을 힘겹게 들었다. 그곳 주인 김영근 씨는 당시 예순넷이었다. 불쑤시개로 화로 속 불씨를 어르고 달래며 "지금 온도로는 괭이 호미 같은 농구를 만들제. 어선 닻을 만들 때는 이 온도로 택도 안 돼" 하던 그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렇지 뭐…. 들떠있는 여행자들이야 가는 곳마다 의미를 찾고 흥미를 찾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생활이고 생존터가 아닌가. 먹고사는 게 우선이지, 의미니 흥미니, 문화니 예술이니 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다.

통영 사람들이 새벽부터 찾는 서호시장도 그곳 주민들에게는 고단한 곳이다. 멸치 따는 할매들은 새벽 4시부터 나온다고 힐끗 일러준 '아지매'는 꾸물꾸물 엉겨 붙는 낙지를 걸어 올렸다.

종류별로 풍성한 멸치.

생선뼈로 곤 국물에 시래기를 삶아서 내는 시락국집 아지매들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물었지만, 대답할 틈도 없었다. 일상은 고되다.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묵묵히 먹었고, 10년 전 4000원이었던 시락국 값이 지금은 5000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더 비싼 곳도 있다. 이렇게 무뚝뚝한 서호시장은 서민들 호주머니를 부끄럽게는 하지 않는다. 도천동 택시기사 같은 서민을 열불 터지게 하지 않는다. 밥값을 비롯해 대부분 통영 관광지 물가가 장난 아니지만, 이곳에는 착한 곳이 많다.

소복하게 쌓인 마른멸치처럼 그래서 소비도 풍성하다. 함께 나들이를 한 ㄱ은 마른멸치를 몇 '푸대'나 샀다. 멸치집 사장은 통이 커 멸치를 덥석덥석 집어줬다. 재미를 섞은 ㄱ의 흥정도 여유롭게 받아줬다. 기분이 좋아진 ㄱ은 천리나 떨어진 충청도 고향집에 가서 데쳐 먹겠다며 '솥뚜껑 문어'도 단단히 쟁였다.

항남식당 우짜면.

새벽 4시부터 문을 열었던 활어노점은 아침 8시까지 풀이 죽지 않았다. 10년 전과 다르지 않다. 황금비늘의 전어가 '다라이' 안에 빽빽하고, '감시'는 제 목 따는 줄 아는지 도마 위에서 펄떡거린다. TV의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이던 문어가 어느새 그물 밖으로 벗어난 곳도 이곳이었다.

터벅터벅 걸어 서호시장이 끝나는 곳에서 항남동 골목을 다시 만났다. 통영 '다찌'의 원산지다. "다찌 역사야 60년이 넘었는데 누가 상대를 합니꺼!" 기껏해야 40~50년 수준의 실비나 통술집이 따라올 수 없다는 논리를 항남동 다찌골목 코끝 빨간 아저씨가 10년 전 이야기했었다.

값을 매기지 않는 풍성한 해물 안주, 해삼 멍게 개불은 기본이다. 항남1길 옛 다찌골목에 그 많던 다찌집들은 세월 따라 바람 따라 정량동, 무전동으로 집결지를 옮겼다.

오늘은 '항남우짜'에서 우짜면을 만났다. 우동에 짜장, 어묵을 섞었다. 시락국처럼 새벽시장 허기진 서민들 배를 채워주던 메뉴다.

산양공작소 주인장.

그리고 강구안, 여행자들이 통영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식당과 갤러리, 게스트하우스가 줄을 잇는다. 통영시와 '푸른통영21'은 지금 이 일대에 '강구안 푸른골목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통영 사람이 말하는 통영과 여행자가 말하는 통영에는 차이가 크다.

통영 골목에 스며들어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싱싱한 문어.

2006년 10월 23일 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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