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다음에 술 한잔하자."

며칠 전 기약했던 만남이 갑작스레 미뤄졌다. 선배는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할 아내에게 미처 양해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만날 날을 꼽으려고 하니, 어쩐지 반응이 미지근하다.

그러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요즘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라…"라며 슬쩍 웃는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날을 기다리던 모임에는 여성이 대다수였다.

최근 문화계를 넘어 정치, 종교, 학계 등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친구, 선배, 동료 관계인 남성들을 만나면 대화의 중심에 어느새 '미투'가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여성이 있는 자리에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며 불만 섞인 푸념이다.

외모, 옷차림, 성격, 남자관계 등 여성을 주제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거다. 그러면서 여성이 많은 자리나 모임은 애초에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서로에게 비법(?)을 전수한다.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실수 때문에 예기치 못할 곤욕을 치를 바에 사전에 원천 차단하자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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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됐고, 왜 바뀌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 인식은 없다.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미투'에 대응하는 방식은 그저 몸을 낮추고 입을 닫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시대와 문화가 변하고 있다. '미투' 운동은 유행이 아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의식이 된 지 오래다. 여성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의 뿌리가 바뀌지 않으면 '미투'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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