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동조가 뿌리 깊은 관행화에 일조성
범죄 목격하면 '미 퍼스트' 용기 필요

지난해 11월 '미투와 위투 그리고 한샘'이라는 칼럼을 게재하며 미투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할까? 라는 의문을 제기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미투운동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가 성폭력 사실을 말하는 순간 받게 되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 더 나아가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고소당할 것에 대한 현실적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계기로 한국사회에서도 미투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서지현 검사가 눈물을 참으며 꾹꾹 눌러 뱉어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는 말은 엄청난 울림이 되었다. 사실 서 검사가 폭로한 성추행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추행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러한 행위에 대해 처벌해야 하는 검사가 그런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사실, 법을 다루는 현직 검사가 성추행을 당해도 8년을 혼자 괴로워해야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씁쓸했다. 이윤택의 말처럼 우리 사회 성추행은 어떤 죄책감도 수반하지 않는 '관행'이었고 그 고통은 피해자들이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자각한 순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미투'는 서 검사가 처음은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참고 넘어가지만 그중 일부는 세상을 향해 '미투'를 외쳤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딱 한 가지다. 그때는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의심하고 외면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해자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경멸한다. 대신 피해자들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한다. 그때와 다른 지금의 이 엄청난 차이는 지금까지의 '관행'이 이후 '관행'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 '서지현'은 정말 없었을까? 서지현 검사가 말하는 성추행이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였을까? 서 검사는 인터뷰 중 당시 자신이 마치 투명인간과 같았다고 말했다. 성추행을 당했던 그 자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그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윤택이 여성 단원들에게 안마를 시키고 밤마다 황토방으로 불렀을 때도 그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심지어 '너 하나 희생하면 모두가 편하다'며 적극적으로 폭력에 가담하기도 했다. 우리는 과연 다를까? 직장에서 상사가 여직원의 어깨나 허리를 감싸도 그러려니 하며 못 본 척한다. 누군가는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옆 자리에 여직원을 앉히고 술을 따르게 한다. 직원들 중 누군가 상사의 성추행에 문제제기를 하면 '뭘 그걸 가지고 그래?',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침묵하거나 동조함으로써 성폭력이 우리 사회 뿌리깊은 '관행'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일조했다. 우리의 침묵이 그들에게 그러한 행위를 해도 괜찮다는 시그널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성적 욕망은 참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참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력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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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미투운동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이제 그다음은 우리 차례다. 문유석 판사의 제안처럼 주변에서 성범죄를 목격했을 때 나부터 방관하지 않겠다는 '미 퍼스트(Me First)'가 필요하다. 더 이상 침묵하고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고 '쓰레기'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 우리가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가장 빠르고 적극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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