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직업이 되어도 행복하더라

2·3월에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있다. 초콜릿을 떠올리자 예전에 먹었던 케이크 한 조각이 생각났다. 달콤 쌉싸름한 쿠키 맛 크림이 매력적인 케이크였다.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수제 디저트를 만들고 있는 젊은 사장님의 케이크라고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창업, 달콤함으로 무장하고 살벌한 창업 시장에 뛰어든 청년 사장님의 소감이 궁금했다.

창원시 진해, 송미래(30) 대표를 작업실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미래 씨가 만드는 케이크는 '나봉케이크'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 나봉케이크 작업실은 진해중앙시장 안에 있다. 미래 씨는 창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다. 졸업 후에는 남들처럼 직장생활도 했다. 취미로 해오던 베이킹이 직업이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다양한 일터 경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대학을 서울에서 나왔어요. 전공은 국사학과였어요. 생뚱맞죠.(웃음)"

첫 직장은 광고 회사였다. 온라인 키워드 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알려진 대로 광고 회사의 업무 강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창원 케이크'라고 검색하면 그 업체가 포털사이트에서 소비자 눈에 빨리 돋보이게 하는, 온라인 키워드 광고 담당 업무를 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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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미래 나봉케이크 대표. / 서정인 기자

첫 회사생활은 힘들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은 약을 달고 살았다.

"그 회사에서 2년 정도 일했는데 업무도 많고 야근수당 같은 것도 전혀 없었어요. 주말 출근도 가끔 했고요. 저는 그때 사원이었는데 저희 대리님, 차장님이 몸이 되게 안 좋으셨어요. 매일 그렇게 일을 하시니까요. 저도 건강이 안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5년 뒤, 10년이 지나면 제가 대리나 차장이 되잖아요. 그 직책을 맡으면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어요."

사이좋은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하는 타지 생활도 외로웠다. 부모님과 가까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미래 씨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창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무얼 해야 할지 고민을 이어갔다. 광고 회사 경력이 있었지만 그 일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했던 카페 일이 생각났다. 미래 씨는 카페를 참 좋아했었다고 했다.

"좋아하는 걸 해보자 싶었어요. 학창시절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서 일이 어떤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업으로 해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입사했어요."

바리스타 업무, 매장 관리, 아르바이트생 관리… 열심히 하다 보니 직급도 올랐다. 2~3년을 서비스직에서 일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카페 일이 서비스직이다 보니 감정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해지더라고요. 좀 더 쉬운 직장을 다녀보자 싶어서 또 회사에 들어갔어요. 해보고 싶었던 건 다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웃음)"

창원에 있는 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창원에 있는 기업 계약직으로 들어갔어요. 체력적으로도 편하고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어요. 전문적인 일은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일이 많지 않아서 오전이면 업무가 끝났다. 오후에는 괜히 상사들 눈치를 보는 시간을 보냈다. 원하던 대로 몸 편한 곳에 왔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때 미래 씨는 베이킹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가면 베이킹을 계속했어요."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했던 카페에서는 케이크 파트에서 일을 했었다. 원래 취미 삼아 빵을 계속 만들어 왔었다고 했다.

"저한테는 힐링하는 거였죠. 저녁에 만들어서 회사에 가지고 가서 직원들 먹이고(웃음) 한동안 그렇게 했는데 스트레스도 풀리고 너무 재밌었어요."

책을 보며 독학으로 만들었지만 맛은 아주 좋았다. 카페 일을 통해 나도 모르게 손에 익은 여러 기술도 도움이 됐다.

"카페에서 일할 때 한 아이싱(케이크나 쿠키와 같은 과자류에 마무리 재료를 바르는 것) 기술을 익혔고 빵 굽는 건 책을 보고 많이 했어요. 따라 해 봤더니 맛있더라고요. 그때가 1년 반 전인데 아직 공부할 게 더 많아요. 그때 그렇게 안 했으면 지금 실력도 못 됐을 거 같아요."

취미였던 케이크 만들기, 직업이 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디저트를 먹이고 흐뭇해하던 정도였던 미래 씨에게 문득 기회가 찾아왔다. 친구가 카페를 개업했다. 2016년 가을 즈음이었다.

"친구가 카페를 오픈해서 홍보를 열심히 해야 했어요. 음료는 특별하게 친구가 구상했는데 뭔가 다른 것도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친구가 케이크를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해서 카페에서 팔게 됐어요."

제일 처음 팔아본 케이크는 산딸기티라미수였다. 한 번 맛본 카페 손님들이 케이크가 있냐고 묻고, 케이크를 먹으러 카페에 오기도 했다.

"반응이 오니까 친구도, 저도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맛있다고 해주시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가볍게 시작한 건데 점점 더 욕심이 났어요. 요즘 이런 디저트가 인기가 많은데, 이런 게 반응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아이디어들이 떠올랐고 고민도 많이 했죠. 그러다 어떻게 아셨는지 다른 카페에서도 연락이 오더라고요. 거래하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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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차베리롤, 미니슈초코무스케이크, 오레오케이크. / 송미래 대표 제공

안 그래도 직장 다니는 것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좋아하는 베이킹으로 인정을 받으니 신이 났다. 미래 씨 표현으로는 내가 나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뒀죠. 제가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서도 일해봤고 몸 편한 사무직에서도 일해 봤더니 나는 뭘 하면 안 되고, 뭘 하면 즐겁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내가 나를 알아버린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케이크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를 바로 차리고 싶었지만 바로 시작하면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계획을 가지고 찬찬히 준비를 해야 오래 장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2~3년 실력을 다지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그래서 카페가 아니라 작업실부터 구했어요. 비용은 최소화해서 5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오븐은 새 걸로 사고 다른 건 중고로 사고, 자본금도 없었기 때문에 최소 자본으로 시작했어요. 인테리어에 투자를 안 했으니까요."

미래 씨가 만든 디저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짧은 기간 동안 창업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갖추어 나갔다. 브랜드 이름도 지었다.

"뭔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진행됐어요. '나봉케이크'라는 이름은 친근하게 불리고 싶어 지었어요. 소박하고 가정적인 이미지, 친구가 만드는 케이크, 언니가 만드는 케이크, 이런 느낌으로 하고 싶어서요. 많은 분들이 '나봉'이 이름이냐고, 별명이냐고 하시는데 아니에요(웃음)"

미래 씨가 만들 수 있는 디저트는 여러 종류인데 왜 케이크를 주 상품으로 삼았을까.

"개인 주문은 거의 홀케이크로 받아요. 케이크와 비슷한 타르트도 있는데 타르트는 가격 대비 약간 사이즈가 작게 느껴져요. 케이크는 크기도 좀 있고 기념일이나 생일에 호불호 없이 많이 쓰이니까 다른 것보다 케이크에 집중해서 하고 있어요."

블로그·SNS 통해 판매, 고객들 위해 프리마켓에도 자주 참여

나봉케이크는 블로그(blog.naver.com/nabong_cake) 등을 통해 주문할 수 있다.

"개인 주문도 받고 있고 요즘은 프리마켓에 자주 나가요. 조각케이크나 다른 디저트는 프리마켓에서 파는 걸로 대신하고 있어요. 조각케이크 구매 문의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제가 매장에 진열하고 판매하는 게 아니다 보니 홀케이크를 조각으로 잘라 판매하다가 남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프리마켓에서는 들고 가기 편하고 가방에 넣을 수 있는 '보틀케이크'나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어요. 조각케이크 판매를 원하시는 고객님들 때문에 시작하게 된 건데 반응이 좋아서 요즘은 프리마켓에 자주 참여하고 있어요. 카페 납품은 진행하다가 구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는 업종이 제과점업이거든요. 식품제조업이 아니면 납품을 못 한다고 해서 이제 납품은 안 하고 있어요."

가장 인기 있는 케이크를 꼽아달라고 했다.

"딸기보틀케이크, 티라미수크레이프… 지금 계절에는 딸기가 많이 나서 말차베리롤이요. 딸기가 제과업계에서는 신의 과일이라고(웃음) 해요. 너무 생크림이랑 잘 어울리거든요. 요즘 개인주문의 90%가 딸기케이크일 정도예요. 어르신들도 좋아하고 어린이도 좋아하고 남녀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니까요."

직접 만든 케이크를 직접 홍보하고 판매하니 반응도 미래 씨에게 바로 닿는다. 아직까지는 창업 후 힘든 것보다는 보람을 더 크게 느낀다.

"재구매해주실 때 가장 기분 좋아요. 사 가셨던 분이 또 연락 오신다는 건 맛이 괜찮았다는 거니까요. 몇몇 고객님은 본인의 이벤트에는 모두 제 케이크를 쓰세요. 시어머니 생신, 남편 생일, 친구 생일, 항상 감사하죠. 연락 오면 반갑고, 더 잘해드리고 싶고(웃음) 제가 프리마켓을 김해에서 처음 했거든요. 그때 공지를 올리니까 진해분이 김해까지 오신 적이 있어요. 오실 줄 몰랐는데 그 멀리서 와주셔서 너무 감동받았었죠. 어떤 손님이 직접 담근 모과차를 주셔서 다 먹고 깨끗하게 씻어서 그 병 보고 힘을 얻으려고 집에 놔뒀어요. 최근 프리마켓 했을 때 1년 만에 그 손님이 오셨는데 너무 반가워서 악수하고 행복하시라고 인사드리고(웃음) 그런 따뜻한 마음이 오갔던 게 기억에 많이 남죠."

아이러니하게도 미래 씨는 디저트를 많이 즐기는 편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미래 씨 주변인들이 혜택(?)을 받는 편이다.

"제가 디저트를 많이 못 먹어요. 다른 맛있는 디저트집 가서도 '와 맛있다!' 하면서 몇 입 못 먹어요 다, 제가 만든 것 테스트할 때는 세 입 먹고 버리죠. 그래서 주변인들 입에 많이 들어가요.(웃음)"

작업 아이디어는 주로 SNS나 책에서 얻는다고 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서울·대구 등 다른 지역에 베이킹을 배우러 가기도 한다. 미래 씨는 아직 스스로 배울 게 많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 직업 삼아보니 괜찮더라

주 5일 9시 출근에 칼퇴근을 하던 때와 달리 미래 씨는 완전히 일을 놓을 수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만족도는 지금이 훨씬 높다고 했다.

"그때는 몸이 편했지만 일요일 밤만 되면 '회사 가기 싫어! 회사 가기 싫어!' 하고, 퇴근하면 날아다녔거든요. 좋아하는 일 하는 지금이 훨씬 행복한 것 같아요."

편한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결정했던 그때 가족들은 처음에 걱정을 했다.

"부모님이 '니 하고 싶은 거 해라' 그러는 스타일이신데 마음속으로는 좀 편한 거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으셨나 봐요.(웃음) 그래서 직장 그만두고 케이크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셨어요. 부모님도 자영업을 해보셔서 요식업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기 때문이었죠. 제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드리니까 끄덕끄덕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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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봉케이크 프리마켓 참여 모습. / 송미래 대표 제공

미래 씨는 지금 생활이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즐겁게 케이크를 만든다.

"처음에 카페 일을 시작한 이유가 카페가 너무 좋아서였어요. 일을 해보니 낭만 같은 건 사라지고 굉장히 일이 중노동이었어요. 손님으로 오는 것과 일을 하는 건 180도 다른 거니까요. 제 취미였던 베이킹이 일이 되고, 또 판매를 해보니 이것도 엄청난 중노동이지만 보람이 있으니 좋은 것 같아요. 어깨, 허리가 너무 아파도 픽업해 간 케이크 맛있게 드시고 연락 와서 너무 맛있었다고 얘기해주시면 피로가 다 녹아내리거든요. 그런 피드백이나 보람이 없으면 지쳤을 거예요. 다행히 아직 창업한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지금도 많이 알려진 건 아니지만 초반에 아무도 나봉케이크를 몰랐을 때는 우울했었거든요. 새로운 걸 고민하면서 정말 조금씩 올라온 것 같아요."

디저트,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창업아이템이다.

"절대 바로 시작하지 말고 꼭 남 밑에서 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이 없다면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직원으로 일하면서 알 수 있어요. 내가 이 일이 맞는지, 보람을 느끼며 계속할 수 있는 일인지요. 이미 가게 오픈해버리고 나서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 하면 손해가 너무 크잖아요."

미래 씨는 일을 본인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앞으로 더 나봉케이크가 알려져도 케이크는 혼자서 만들겠다는 마음이 크다.

"여러 선생님들한테 많이 배우러 다니고 있는데 가보면 대부분 혼자 운영하시더라고요. 동업자와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면 트러블이 생길 일이 많잖아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거 떠오르면 바로 만들어버리면 되니까요. 앞으로 베이킹 클래스를 할지 카페를 할지, 커피 중심일지, 디저트 중심일지, 고민하고 있어요. 베이킹은 계속 저 혼자 할 것 같거든요. 그럼 생산량에 한계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디저트를 전문으로 하면 체력적으로 너무 버거울 것 같아요. 아까 혼자 하니까 괜찮냐고 하셨는데 혼자 창업하는 것의 장점은 제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거고 가장 아쉬운 건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생산량 한계는 곧 매출에 한계가 있다는 거거든요. 그게 단점이라면 단점인 것 같아요.(웃음)"

나봉케이크는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다. 미래 씨는 작업실 계약이 10월에 끝난다고 했다. 그다음 공간을 어떤 형태로 꾸릴지 고민하고 있다.

"지금 작업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방향을 잡아서 제대로 가게를 오픈할 생각이에요."

디저트는 즐거움을 북돋아 주고 우울함을 위로한다. 디저트를 즐기지 않는 미래 씨지만 그에게 디저트를 만드는 일은 본인이 만드는 케이크만큼 달콤하다. 어떻게 보면 얼결에 한 창업. 그는 나봉케이크를 잘 키워갈 생각이다. 미래 씨의 맛있는 케이크로 가득 채워질 가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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