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상을 지키던 해군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로

대한민국 해상을 지키던 해군에서 골퍼, 현재는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수웅(74) 테이블커피하우스 대표가 주인공이다. 이 대표 사전에 '어설프게'란 없다. 해군사관학교부터 프로 골퍼, 바리스타 코치 자격증까지, 3가지 직업 모두 전문가 경지에 도달했다. 74년간 쉴 새 없이 달려온 그의 삶이 궁금했다. 인터뷰를 위해 이 대표가 운영 중인 커피숍으로 향했다.

가족들을 위해 선택한 군인의 길

커피숍 건물 외벽에는 '국제 바리스타 협회 창원지회장, 한 방울 커피의 눈물(더치커피)와 정성의 손 맛(드립커피)를 고집하는 바리스타가 당신을 초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큰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 대표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질문으로 군인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물었다.

"2남 4녀 중 장남이었습니다. 위로 누나가 있는데 공부를 잘했어요. 서울대를 가려고 했지만 집안 반대로 못 갔죠. 당시 경희대학교가 막 설립이 됐는데 학력대회에서 1~3등을 한 학생들은 무료로 다닐 수 있었어요. 그 시험에서 누나가 2등을 했습니다. 저도 집안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해군사관학교에 자원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 가고 1963년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24년 동안 군인의 삶을 살았다. 제대 후 이 대표는 가족 모두와 서울로 갈 계획을 세웠다.

123.jpg
▲ 이수웅 테이블커피하우스 대표. / 박성훈 기자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었는데 전학 처리가 빨리 안 됐습니다. 당장에 수입도 없고, 6개월간 퇴직금으로 버텼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서울행을 포기했습니다. 창원에서 사업을 해볼까 하는 찰나 지인이 '앞으로 골프연습장 사업이 괜찮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창원에 처음으로 골프연습장을 열었습니다."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88올림픽이 개최되고 골프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났다. 이 대표는 당시를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바빴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골프연습장에 근무하던 한 프로 골퍼의 태도가 문제였다. 자리 비우기는 예사였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이에 회의를 느낀 이 대표는 직접 프로테스트에 도전했다.

"손님이 오면 제가 상담하고 프로 골퍼가 가르치는 시스템으로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가 자리를 자주 비웠습니다. 손님은 기다리는데 사람은 없고,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진짜 머리가 주뼛 설 정도였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직접 프로테스트에 도전했습니다. 당시 인터넷이 어딨습니까. 레슨 영상을 담은 비디오가 전부였죠. 밤에는 영상으로 공부하고 새벽부터 특훈을 했죠. 손을 당기면 피가 흐를 정도였습니다. 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갔습니다. 당시 44살이었는데 시험 보는 사람 중에서 최고령이었죠. 그래도 피나는 노력 끝에 한 번에 붙었습니다."

10년이 흘렀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했던가. IMF가 찾아왔다. 그 많던 발길이 뚝 끊겼다.

"사업을 접고 김해 진영에 땅을 사 골프연습장을 만들었습니다. 집도 인근에 멋지게 지었죠. 문제는 당시 진영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이 없었어요. 거기다 산사태까지 났습니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건물까지 새로 지었는데 빚만 쌓이게 됐죠. 사람이 빚이 있으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요. 골프연습장 사업은 그렇게 접었습니다."

우연히 접한 커피

이후 교회 장로였던 이 대표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목사와 개척교회에 매달렸다. 7년을 고생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결국 문을 닫고 다른 교회로 옮겨갔다. 이 대표는 그곳에서 우연한 기회로 커피를 접했다.

"3년 전이네요. 교회에 가니까 휴게실 공사를 하고 있었어요. 목사님께 이유를 물어보니 작은 카페를 연다고 하더라고요. 폐업하는 카페를 찾아가 중고로 물품을 사 왔죠. 그런데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제가 또 자원했습니다. 서울로 가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코치 과정도 있더라고요.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고 해서 코치 과정까지 마스터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나라에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등 이름조차 생소하던 커피가 물처럼 찾는 기호식품이 됐다. 하지만 커피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대표에게 커피의 유례를 물어봤다.

123.jpg
▲ 이수웅 테이블커피하우스 대표. / 박성훈 기자

"우선 커피는 1000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생겼습니다. 양을 키우는 한 목동이 있었는데 하루는 몇 마리가 잠도 안 자고 벌떡벌떡 뛰는 것을 발견했어요. 왜 그런지 살펴보니 빨간 열매를 먹더랍니다. 그게 바로 커피 열매였죠. 그래서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고향'이라고 불립니다. 당시에는 이름이 '카파'였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그다음 영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거기서 '커피'라는 이름이 됐습니다. 이윽고 전 세계로 커피가 전파됐죠."

커피는 추출 방식에 따라 크게 에스프레소, 드립커피, 더치커피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특징에 대해 물어봤다.

"에스프레소는 전용 기계를 이용해 높은 압력으로 짧은 순간에 추출하는 커피죠. 흔히 '이탈리아 커피'라고 부릅니다. 더치커피는 상온의 물을 이용해 장시간에 걸쳐 우려낸 커피입니다. 영어로는 '차가운 물에 우려낸다'는 뜻으로 콜드브루(Cold brew)라고도 부릅니다. 드립 커피는 드리퍼(커피 끓이는 도구)와 종이 필터를 사용해 끓는 물을 원두에 부어 걸러 내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프레소, 더치커피, 드립커피

이처럼 커피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이 대표에게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물어봤다.

"에스프레소는 커피 원두를 곱게 갑니다. 전용 기계를 이용해 원액을 뽑아냅니다. 가장 진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죠. 양은 30mL 정도가 나오는데요. 그 위에 크레마라는 옅은 갈색의 크림 층이 생깁니다. 먹는 방법이 좀 특이합니다. 우선 향을 맡은 후 크레마를 입술과 입안에 바릅니다. 그다음 원액을 가글 하듯이 싹 넘겨주는 거죠. 굉장히 쓸 것 같지만 의외로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치커피는 전용 기구에 분쇄한 원두를 넣고 뜨거운 물이 아닌 상온의 물을 이용해 한 방울씩 장시간에 걸쳐 우려내 줍니다. 이 때문에 '커피의 눈물'이라 부르기도 하죠. 일반적인 커피에 비해 쓴맛이 덜합니다. 원액을 그대로 마시는 것보다는 물이나 얼음을 넣고 희석해서 마시는 게 좋습니다."

123.jpg
▲ 이수웅 테이블커피하우스 대표. / 박성훈 기자

이 대표는 잠시 숨을 골랐다. 드립커피를 '커피의 꽃'이라 칭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커피라고 했다. 그만큼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드립 커피입니다. 필터를 받칠 수 있는 받침대를 컵 위에 설치하고, 뜨거운 물을 그 위에 붓는 방식입니다. 직접 손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만들기 때문에 핸드드립이라 일컫기도 하죠.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필터는 대부분 종이로 된 것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종이 필터를 만들 때 표백제나 풀을 사용합니다. 뜨거운 물이 종이 가장자리에 닿으면 그 성분이 커피에 같이 녹기 때문에 맛이 이상해져요.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원을 그리면서 추출해야 합니다. 드립커피는 10명이 똑같은 원두를 놓고 같은 방식으로 추출해도 사람에 따라 맛이 다 틀려요. 그게 매력이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커피의 꽃'이라 칭하고 싶어요."

에스프레소나 더치커피는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다. 이와 달리 드립커피는 저렴한 기구를 사용해 집에서도 얼마든지 최상의 맛을 뽑아낼 수 있다. 이 대표에게 맛있는 드립커피를 추출할 수 있는 팁을 부탁했다. 이 대표는 커피 원두가 든 병 두 개를 들고 왔다.

"커피의 가장 기본은 원두입니다. 첫 번째로 산패되지 않는 신선한 원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쪽은 산패된 원두고 다른 쪽은 신선한 것입니다. 냄새가 확연히 틀리죠? 이걸 커피로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원두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끝났다고 볼 수 있죠. 두 번째는 에스프레소, 더치커피보다 원두를 굵게 가는 것. 세 번째는 물 온도입니다. 84~92도로 맞춰야 해요. 온도계가 없을 때는 끓인 물을 다른 용기에 부었다가 다시 옮기는 행위를 몇 번 해주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잔을 추출한다고 했을 때 원두 양은 10~15g이 적당합니다. 이 네 가지만 지키면 훌륭한 커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끝없는 도전

적지 않은 나이에 가게 운영이 힘들진 않은지 물어봤다. 이 대표는 가게 한쪽에 놓여있던 붕어빵 기계를 가리켰다. 카운터 앞에는 큼지막한 붕어빵이 여러 개 있었다. 이 대표가 손님들을 위해 구매한 기계였다. 팥빙수에 들어가는 재료도 직접 재료를 구매해 손질한다고 한다.

"한 번에 붕어빵 4개가 나옵니다. 가격을 정할 때 많이 고민했어요. 대학교 근처니까 무조건 비싸게 받을 수가 없었죠. 2000원은 너무 비싸고, 1000원은 마진이 안 남아서 1500원으로 결정했어요. 찹쌀로 만들어서 맛도 일품이죠. 또 시장에서 복숭아를 사다가 집에서 끓입니다. 이 소스를 팥빙수에 넣으면 다른 재료가 필요 없어요. 메뉴 중에 대추차가 있는데 이것도 직접 칼로 씨를 빼고 끓여서 가지고 와요. 찾는 사람들은 이것만 찾죠. 이 이야길 왜 하냐면 즐겁지 않으면 이렇게 못합니다. 움직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제가 만든 것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게 행복한 거죠. 매일을 보람되게 보내고 있습니다."

123.jpg
▲ 테이블커피하우스 전경. / 박성훈 기자

이 대표는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움직였고 파고들었다. 그 결과 도전한 분야만큼은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다. 한평생 쉴 새 없이 움직인 이 대표의 또 다른 목표는 무엇일까?

"올해는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준비 단계라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커피를 접목한 분야예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커피숍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교육을 하고 싶어요. 커피숍은 15평 이상을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테리어보단 커피 맛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남은 인생은 커피 연구도 하면서 제가 교육한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