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하려 않고 오히려 지려는 말도 있어
이은재·홍준표 발언 따질 가치조차 없어

"어른 말 좀 들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세계작가대회 국제인문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일본작가 '아베 마사히코'의 입에서 나온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다시 떠올린 것은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의 이른바 '겐세이' 발언 때문이다. '어린 말과 이야기가 갖는 힘'을 주제로 한 '아베 마사히코'의 발표문은 친절했고 그만큼 상투적이었지만 작가로서의 솔직한 고백과 질문이 흥미로웠다.

"어른들은 항상 말하고 듣는 쪽은 아이들이다. 늘 이런 구도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말 좀 들어!'라고 혼내면서도 아이들한테 계속 말을 한다. 이유는 뭘까?" 그는 "말 좀 들어!"라고 혼내면서도 아이들한테 계속 말을 하는 이유를 어른이 되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막상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그 사정이 이해된다며 그 까닭을 규칙, 지혜 그리고 가치관을 주입하려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 뒤에는 권력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란 상대를 설득하고, 생각대로 조종하려는 지배욕의 표현이라며 그래서 어른과 아이들을 하나의 유형으로서, 사회 여러 곳에서 이처럼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학교, 회사 등 여러 곳에서 지혜와 경험, 그리고 힘을 갖춘 자가 경험이 없고 힘없는 자에게 뭔가를 들려주려는 상황을 설명했다. 사회는 그러한 '말하기 시스템'을 통해 안정을 실현하려 한다며 말은 지배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꼭 이러한 작용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 반대도 있다는 것이다. 즉 '지배하려 하지 않는 말, 이기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고, 예리함이나 현명함으로 꾸미려 하지 않는 말, 오히려 지는 편의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부터 이러한 점에 의문을 가져왔다며 더욱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약하고 쓸모없는 말이 힘을 가질 때도 있지 않을까?" 그는 소설과 시의 세계에 이 질문을 위한 좋은 본보기가 있다고 말했다.

작품 속 화자는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한다며 자신이 좋아서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 속의 어린 면모―'아이' 같은 부문―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곧 현명하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사회의 '겉' 구조라면 그 '속'은 다른 구조가 기능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어쩌면 진정으로 말을 잘하는 쪽은―말할 힘을 가진 쪽은―'어른'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해서, 그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똑같이 질문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에게 그리고 홍준표 대표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해먹던 버릇인지 말이다. 홍준표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3·1절을 앞두고 이은재 의원이 일본말인 '겐세이'(견제)를 사용했다고 막말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 참 어이가 없었다"며 "본질은 외면하고 지엽말단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괴벨스식 선동사회로 가는 것에 우려한다"며 이 의원을 두둔했다. 그러면서 "가장 최근 희대의 막말은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라는 사람이 한 '한국 대통령이 주한미군(더러) 나가라고 한다면 나가야 한다'는 그 말이 가장 악질적인 막말"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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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3·1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그들의 언행을 보면 따질 가치도 없어 보인다. '아베 마사히코'의 말이나 듣자. "어쩌면 진정으로 말을 잘하는 쪽은―말할 힘을 가진 쪽은―'어른'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아이들', '어리다는 것', '약자'라는 개념을 근거로 세상을 보는 것 자체가 '편견'이다.

말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홍 대표나 이 의원이 알고 있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 잘난 입을 빌려 꼭 하나는 묻고 싶다. 도대체 어디서 해먹던 버릇인가? 3월, 다시 새봄이다. 제발, 좀 닥치고 애들이랑 동시부터 좀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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