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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굉무의 음악이야기]45년 만에 팬들이 돌려준 잃어버린 음반

방의경의 <내 모래 모음>

고굉무 음악카페 해거름 대표 goingmu@dreamwiz.com 입력 : 2018-03-05 15:51:26 월     노출 : 2018-03-05 15:57:00 월

2년 전쯤이었을까? 적적한 분위기를 한순간에 깨는 노래신청을 받았다. 방의경의 노래를 들려달라는 주문이었다. 낯설지 못해 생소하게만 들리는 이름이다. 일단 받은 신청은 무조건 털어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 어렵지 않게 음원을 찾아 들려줄 수 있었다. 노래를 감상한 손님은 구하기 힘든 음반이라 방의경의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없었는데, 여기에서 듣게 되니 참 좋았다고 하며 언젠가 다시 방문하겠노라는 여운만 남긴 채 훌쩍 떠나버렸다. 조금의 여유만 있었더라도 음원의 주인공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다시 한번 노래를 틀었다. 소박한 느낌의 통기타 연주에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양희은과 달리 음색이 너무 깨끗하게 와닿아 이런 가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갔지만, 다음 신청곡을 준비하느라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짬을 내어 꼭 살펴봐야지 하면서도 잊고 있던 차에, 최근 들어 그녀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얼른 방의경에 대한 검색을 마친 나는 대단한 뮤지션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앞섰지만, 대신 많은 이들에게 그녀의 노래를 들려주며 가벼운 입담으로 알려드릴까 한다.

방의경의 독집은 지금까지도 포크 애호가와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앨범은 수집가들로부터 '컬렉션의 끝'이라 할 만큼 희귀 음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어느 누가 가지고 있다더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소장가들의 전설이 되어왔다. 아이러니하게 정작 방의경 자신도 가지고 있질 못해 딸에게 남겨줄 음반조차 없었다. 이런 사연을 접한 신동혁(대구 서문복지재단 사무국장)은 그녀를 기억하는 팬들이 활동하는 포크 음악동호회 '바람새친구'를 찾았다. 우연히 그가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의 기증 물품 중 오디오와 200여 장의 LP 음반을 정리하다가 낡은 앨범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음반을 여러 번 듣고 감화를 받은 그는 아직도 자신의 앨범이 없다는 방의경에게 앨범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40년 넘게 기다려온 앨범은 그녀와 처음이 아니면서 처음 마냥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방의경의 앨범 <내 노래 모음>이 그토록 세간의 관심과 이목을 끈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녀의 음악완성도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방의경 이전에 먼저 활약했던 가수들은 많았다. 오늘날 음반이 확인되는 국내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박인희다. 그녀의 데뷔 시절인 혼성듀엣 '뚜아에무아' 때부터 노랫말 쓰기에 재능을 보였는데, 방의경보다 앞선 1971년 8월에 창작곡 '그리운 사람끼리'를 발표했다. 솔로로 독립한 1972년부터 '모닥불', '하얀 조가비' 등 2곡 내외의 새로운 창작곡을 새롭게 발표하는 앨범마다 수록하며, 국내에도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존재함을 과시했다. 뒤를 이어 이연실, 김광희, 김현숙 등도 비슷한 시기에 음반을 발표했다. 이들 역시 음반을 통해 1세대 여성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창작곡발표가 아닌 앨범 차원에서 본다면, 창작 독집을 발표한 최초의 여가수는 방의경인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 기타반주에 노래까지 오로지 1인 작업으로 만들어낸 이 음반은, 한국대중 가요사에 첫 여성 싱어송라이터 독집앨범으로 기록될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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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의경.

방의경은 1949년 9월 15일 서울 서대문에서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서울피스톤 자동차회사를 운영하며 한국 최초의 불자동차를 만든 발명가 방응준이었고, 고아원 아이들의 엄마로 불린 사회사업가 이정순이 어머니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자연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가진 별난 아이였다고 한다. 어느 비 오는 날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비를 맞으며 놀고 있던, 딸의 기이한 모습에 기겁한 어머니는 그녀를 서울대병원 정신 클리닉에 데려가기도 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자연과의 교감을 글로 표현하며 사색을 즐겼다. 

나중에 이런 부분이 바탕이 되어 '자연종교인'이라 스스로 칭할 만큼 자연과 우주에 관해 노래하고, 시대의 아픔을 은유적인 노랫말로 표현했을 것이다. 이대부고 시절 군사정권의 제안을 거부해 탄압을 받던 부친의 고통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즈음, 존 바에즈, 밥 딜런의 저항적인 포크 가락이 그녀의 가슴에 와닿았다. 1968년 이화여대 장식미술과에 입학하면서 교내축제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방의경은, 정미조와 더불어 이화여대 미대의 '노래 잘하는 쌍두마차'로 통하며 학생대표로 월남 위문공연 길에 오르기도 했다. 2학년 축제 때 작곡가 이봉조가 반주를 맡고 조영남이 심사위원을 했던, 문리대 노래자랑대회에서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대중적인 노래 활동을 반대했던 아버지가 그녀의 노래를 듣고 감격한 나머지, 값비싼 야마하 기타를 선물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였다. 이때 반주를 맡았던 이봉조는 2옥타브를 넘나들며 맑은 음색으로 노래하는 방의경의 바이브레이션에 감탄하며, 하늘에서 내려준 맑은 음성이라며 극찬했다. 

한번은 이화 여대 메이데이 때 이봉조는 과대표로 노래를 한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자신의 차에 태워가던 중,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면서 나이트클럽으로 인도했다. 그곳에는 이봉조 악단의 전 단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화려한 무대에 나설 뜻이 없었던 그녀는 집요한 이봉조의 픽업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작곡가 길옥윤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그 역시 곡을 쓸 때마다 "이 노래는 방의경의 것"이라며, '제2의 패티김' 탄생을 꿈꿨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래서 방의경의 대타로 물색한 가수가 한때 최고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혜은이였다고 하니 매우 흥미로운 사연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그녀의 실력과 맑은 목소리는 대 작곡가들이 탐을 낼 수밖에 없는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방의경은 자신이 직접 쓰고 만든 노래를 부르길 원했다. 1969년 말 YWCA 회원이었던 그녀는 평론가 이백천이 주도한 '청개구리'모임에 자연스레 참여했다. 이 시절 김민기와 가까이 지내던 그녀는 그의 '귀하'라는 창작곡을 듣고 "김민기의 어둡고 슬픈 스타일보다는 밝고 맑게 세상을 보게 할 수 있는 곡을 쓰고 싶었다"라며 자신만의 음악 목표를 정했다. 이를 계기로 1970년에 첫 창작곡 '겨울'을 만들면서 30여 곡이 넘는 노래를 작곡하였다. 방의경은 "곡을 만들게 될 때 가슴이 벌렁벌렁 뛰면서 전깃줄에 감전되듯 저절로 가사와 곡이 한꺼번에 떠올랐다"며 당시의 심정을 회고하였다. 그해 가을, 최고의 음향시설로 한국 포크의 메카를 꿈꾸며 충무로 대연각호텔 옆에 새롭게 문을 연 음악감상실 '내쉬빌'은 방의경의 개인 리사이틀 무대로 시작되고 있었다. 상업적인 가수를 배제하고 진지한 창작곡으로 노래하는 이들을 우대했던 내쉬빌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대학가 포크 싱어송라이터들의 터전이 되었다. 방의경은 이곳의 '두목'으로 불리었고, 그녀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관객을 선별해 입장시킬 정도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1971년 말 기독교방송 김진성 PD와 평론가 최경식이 제작한 김민기의 독집음반을 접한 내쉬빌의 3인방(이수일, 김무영, 김유복)은 충격을 받았다. 이에 자극을 받은 이들은 내쉬빌의 음악을 남기기 위해 앨범을 제작하기로 했다. 멤버들은 만날 때마다 각각 녹음했다. 방의경의 기타 세션을 자청한 미8군 기타리스트 그레그가 함께 참여해 '불나무'를 녹음하였다. 그녀의 창작곡 '불나무'는 500장 한정본의 컴필레이션 앨범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들>에 수록되어, 1972년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하였다. 두 차례에 걸쳐 재발매된 이 음반은 김민기의 독집음반과 더불어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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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의경의 1집 <내 노래 모음>.

대학 졸업 후 김진성 PD의 긴 설득 끝에 기독교방송 청소년 인기프로그램인 '세븐틴' DJ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 게스트로 나온 보성고 3학년 김의철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두 사람은 의남매를 맺고 인생과 음악의 인연을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4개월 남짓 짧았던 DJ 생활을 그만두고 머리를 식힐 겸 시골로 여행을 다녀오자, 성음제작소 나현구 사장이 음반제작을 제안했다. 방의경의 유일한 독집음반 <내 노래 모음>은 그녀가 만든 11곡과 서유석의 노래 '친구야'를 수록하여 1972년에 발표한다. 실제로 이 음반의 사운드는 그렇게 화려하지 못하다. 그저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이따금 새소리, 파도 소리 같은 자연 효과음이 들어있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어두운 사회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가사와 맑고 청아한 목소리만큼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정작 그녀는 이 음반에 대해 "독집은 녹음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재킷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찍은 사진을 레코드사에서 일방적으로 선택해 큰 애착이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방의경의 독집음반은 발매 즉시 방송과 판매금지조치가 내려졌다. 시중 레코드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그녀의 모든 음반은 칼로 그어져 폐기되었다. 암에 걸린 줄 알았던 환자에게 생명의 불씨를 지펴준 사연으로 유명한 '불나무'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라 하여 금지곡이란 굴레를 씌웠다. 결국 그녀의 <내 노래 모음> 앨범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오늘날 대중에게 그녀의 이름이 낯선 것은 암울했던 군사정권의 금지문화 때문이라 볼 수 있겠다.

어느 날 대학 선배인 KBS라디오 PD에게 "펑크 낸 가수의 대타로 노래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은 그녀는, 남산의 '그곳'을 은유한 '검은 산'을 불러 성질이 난 마음을 달랬다. 그 여파로 프로그램이 통째로 심의에 걸려 하차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974년 TBC '5시의 다이얼' DJ를 잠시 한 후, 고교동창의 주선으로 장충동 스튜디오 엔진니어의 도움을 받아 2집 녹음준비에 들어갔다. 방의경은 자정을 넘겨 통금시간이 되면 스튜디오 문을 잠그고 비밀리에 밤샘 작업을 하였다. 이렇게 하여 '하양 나비', '마른 풀', '검은 산' 등 방의경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30여 곡의 노래를 녹음할 수 있었다. 특히 '하양 나비'와 '마른 풀'은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을 소재로 만든 노래였다. '하양 나비'는 가시는 분들의 모습을 그려냈고, '마른 풀'은 비록 가시더라도 다시 우리에게 소생할 것이라는 의지를 담아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인에게 맡겨둔 마스터 음원이 분실되는 바람에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난 2016년 그녀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팬들의 모임인 '바람새친구' 동호회에서 십시일반 뜻을 모아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방의경 본인조차 가지지 못했던 희귀본 1집을 복각해 LP 음반으로 제작하고, 새로운 노래들을 녹음한 2집을 만들었다. 마침내 복각본 LP 1집과 1, 2집을 묶은 CD 전집을 발매함으로써 묻혀있던 <내 노래 모음>이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통기타 여가수 독집 대부분이 '고운 노래 모음', '밝은 노래 모음'이라 표기했던 것과 달리, 방의경이 '내 노래 모음'이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수록곡 모두를 창작곡으로 노래했다는 기념비적인 음반임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어야 할 싱어송라이터였고, 지금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만 될 음악인이었다.

산꼭대기 세워진 이 불나무를

밤바람이 찾아와 앗아가려고

타지도 못한 덩어리를 덮어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주검을 데려와 주는가를

 

덩그라니 꺼져버린 불마음 위에

밤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네어도

대답 대신 울음만이 터져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주검을 데려와 주는가를

 

산 아래 마을에도 어둠은 찾아가고

나 돌아갈 산길에도 어둠은 덮이어

들리는 소리 따라서 나 돌아가려나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주검을 데려와 주는가를

- 방의경 '불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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