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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렬의 생태이야기] (37) 무술년 개 이야기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mrbin77@hanmail.net 입력 : 2018-03-05 15:31:34 월     노출 : 2018-03-05 15:40:00 월

아주 오랜 옛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드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다른 곳으로 급히 이동하고 있다. 아마도 다른 무리에게서 쫓겨난 듯하다. 유인원인지 사람인지 얼핏 보기엔 구별도 되지 않을 정도다. 이들 무리에겐 하루하루 죽지 않고 목숨 부지하며 사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광대뼈는 툭 튀어나왔고 옷은 입지 않았거나 대충 몸에 동물 가죽을 둘렀을 뿐이다. 이들은 무리 지어 식물 열매나 사냥감을 찾아 이곳저곳 멀리까지 헤매다닌다. 수컷들 손에는 돌로 만든 도끼와 뾰족한 뼈로 만든 창이 들려져 있다. 눈망울은 불안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수면 부족에 시달린 모양이다. 아이들은 엄마 곁에 졸졸 붙어 다니며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숲속과는 달리 초원엔 여러 동물들이 많지만 언제 어디서 힘센 맹수의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사방에서 동물 울음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주인공은 회색늑대와 자칼이다. 사람들 무리 가까이까지 다가와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날은 다행히도 낮에 멧돼지와 사슴 사냥에 성공했다. 불 주위에 둘러앉아 사냥한 동물로 배를 채우고 먹다 남은 뼈다귀는 잠자는 곳 주변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배가 고프나 배가 부르나 늘 불안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회색늑대와 자칼이 다가와 먹다 남은 뼈다귀를 주워 먹는다. 멀리서 사납게 짖어대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다가온 동물들은 다소 온순해 보인다. 사람들이 먹다 버린 뼈다귀와 남은 살점들이 이들에게도 배고픔을 채우는 요긴한 먹이가 되는 모양이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동물들이 찾아온다. 이제는 사람들이 먼저 반긴다. 이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간다. 어느새 회색늑대와 자칼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 되었다. 이젠 예전보다 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컹컹 짖는 소리로 사람 사는 주변을 지켜주는 개들 덕분이다. 사람들이 키우기 시작하는 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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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개는 약 1만 4000년쯤 중동 지역의 중소형 늑대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들이 기르던 늑대 새끼 중에서 사람을 피하지 않고 특별히 친밀성을 보이는 개체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자들마다 주장이 다름도 알 수 있는데 어떤 학자는 개의 조상들은 오래전(13만 5000년 전)에 늑대와는 다른 생태계를 찾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던 야생 개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 일부 동물행동학자들은 늑대와 자칼의 교잡으로 개가 생겨났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었다. 특이한 사실은 개와 가까운 친척 동물인 늑대, 코요테, 자칼이 서로 간에 자유로운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개 유골은 중동 지역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1만 4000년 전의 두개골 파편들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인간에 의해 길러진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이 개라는 사실이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있는 야생 늑대의 수는 10만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반해 개는 10억 마리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애견 단체에서 인정하는 개의 품종만도 300여 종에 이른다. 늑대는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전 지역에 살고 있는 중형 육식 동물이다. 지능지수가 높고 서열이 확실하며 무리 지어 사냥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회색늑대는 아시아와 캐나다, 알래스카 지역에 널리 서식하고 있는 동물이다. 코요테는 북미 대륙에만 서식하는 갯과 동물이다. 자칼은 아프리카와 남부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늑대나 코요테와는 달리 건조하고 탁 트인 열대와 아열대성 기후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다. 서로 간에 번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운데 아직까지도 이들이 혈연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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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의 개와 사람들.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개의 유골은 기원전 5,000년 전후 시기다.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던 인간 삶의 방식이 농경 위주로 바뀌게 된 시기와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정리해서 살펴보면 개의 조상은 야생 개에서 시작되었거나 늑대, 자칼, 코요테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무렵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된다. 녹말이 풍부한 음식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육식을 주로 하던 개의 조상들도 사람들이 먹는 녹말 음식으로 식단을 바꾸게 된 것이다. 농경 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과 오랫동안 같이 살게 되면서 개들도 공격성이 약한 동물로 진화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축화의 긴 여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 의식을 더 잘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개체들이 선택받게 된 것이다. 개와 인간의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천포 늑도에서 출토된 사람 뼈와 함께 여섯 구의 전신 개 유골이 발견되었다. 모두 수컷이었으며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아마도 무덤 주인이 기르던 개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죽은 주인을 저승으로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천포 외에도 경주 안압지, 경산 임당동, 해남 군곡리 패총에서 개의 두개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도 오랜 옛날부터 개를 애완용으로 길러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골들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개들로는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 동경이, 고려개, 제주개, 거제개, 불개 등이 있다. 진돗개는 '사납고 위엄이 있으나 소박한 감이 있다. 감각은 예민하고, 동작이 민첩하며 삼각형인 귀는 직립하고 있으나 앞으로 조금 기울어 있다'라고 1937년 일본인 모리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1937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시한 보고서 내용이다. 모리 교수는 이 보고서에서 진도섬의 개가 일본 개들을 닮았으므로 내선일체의 징표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자랑하는 진돗개의 존재 가치를 세상에 널리 드러낸 최초의 문헌이 바로 모리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였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진도라는 고립된 섬 환경이 원래부터 기르고 있던 진돗개의 좋은 특성들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풍산개나 제주개, 거제개도 비슷하게 지역적으로 고립된 환경에서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개들이다. 풍산개는 함경남도 풍산군 풍산면과 안수면 일대에서 기르던 토착 개다. 풍산개 역시 일본인 교수 모리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다. 제주개와 거제개도 고립된 섬 환경 속에서 길러진 개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명맥 유지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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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마을의 토종개.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반면에 우리나라 옛날 기록에 가장 많이 등장한 개가 삽살개다. 삽살개의 원래 의미는 '액운을 쫓는 개라'는 뜻이다. '삽'은 '퍼낸다, 없앤다'는 뜻이고, 살은 액운을 말하는데 말 그대로 악귀 쫓는 개를 뜻하는 말이다. 얼굴을 덥고 있는 긴 털이 있는 개 중에서 덩치가 큰 개는 삽살개로 불렸고 작은 개는 발발이로 불려왔다. 삽살개는 뒤늦게 경북대 하지홍 교수의 노력에 의해 1992년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삽살개는 덥수룩한 풍모와는 달리 가족이나 친분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 표현이 강한 개다. 강아지 시기에 호의적으로 사귄 사람이라면 몇 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온몸으로 반기는 영특함과 애정이 있으며, 가족에게는 저항하지 않는 순종적인 면이 있다. 또한 돌발 상황에 대한 반응과 위급 상황에의 대처가 빠른 순발력이 있는 개다.' 경북대 하지홍 교수가 말하는 삽살개의 특성이다. 알고 보면 우리 민족 정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개가 바로 삽살개였던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사라진 우리 문화가 한둘이 아님을 진즉에 알긴 했으나 우리 토종개들까지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는 것은 새롭게 안 사실이다. 일제는 1938년부터 1945년 패망할 때까지 8년에 걸쳐 우리 토종개 껍질 150만 장 이상을 벗겨 군수품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말 못 하는 개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조선의 유명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등이 그렸던 개의 모습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화가들이 그렸던 민화 속에 등장하는 개들이 바로 삽살개들이었다. 개를 지칭하는 한자어로는 구(拘), 견(犬), 오(獒), 방(尨)이란 네 글자가 있다. 구와 견은 지금까지도 흔히 쓰는 말이다. 구는 작은 개, 견은 조금 큰 개를 지칭하는 용어다. 오자는 큰 개를, 방자는 더펄개, 사자개 또는 삽살개, 락사구라는 개 이름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였다고 한다. 조선 중·후기 한반도 전역에 흔하게 살았던 토종 삽살개의 이름을 통틀어 방이라 지칭했던 모양이다. 이런 이름들이 사라진 이유는 일제 강점기의 영향도 있지만 서양 애견 문화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근대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도그 쇼를 통해 만들어진 서양 애견문화의 산물이 우리 토종개를 대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토종개들까지 영국 애견협회(The Kennel Club), 미국 애견협회(AKC)의 품종 인정을 받아야 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 문화와 더불어 아름다운 우리 개 이름까지 사라진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개는 사람과 가장 가까지 지내는 동물이다. 애견 문화가 발달한 지금은 더욱더 크게 사랑받는 반려동물이 되었다. 우리 문화와 더불어 우리 토종개들도 사람들 사랑 듬뿍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는 무술년 개의 해다. '개도 기르면 은혜를 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에 나오는 개들처럼 개와 더불어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천만을 넘었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의 80% 이상이 개를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개는 우리의 친구이자 가족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 반면에 한 해 동안 버려지는 유기견 숫자가 10만 마리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제발 영리하고 충성 어린 '개만도 못한' 인간이 되는 경우만큼은 사라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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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썹이 그려진 개.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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