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에 오토바이를 탄다는 건…

2월 초 주말에 전북 군산 선유도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지인들과 만나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올해 겨울은 유난하다. 웬만해서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남부지방도 새벽에는 영하 10도가 예사다. 애초 계획은, 수도권이나 경남권에서 가는 이들 모두 이런 추위를 무릅쓰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집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임 날짜가 다가오고 일기예보가 나오면서 계획을 바꿔야 했다. 서해안 일대에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 때문이었다. 모임 날짜에 가까워질수록 눈 내릴 가능성은 높아지고 예상 적설량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고민을 했지만 결국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차를 타고 가기로 했고, 눈길에 대비해 4륜구동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모두 11명이 모였는데 이들 중에 4륜구동 차를 갖고 있는 이들이 몇 명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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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선유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과 그 끝 오른쪽 망주봉이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그림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다만 눈 내리는 겨울바다의 바람은 무척 매서웠다. / 조재영 기자

 

전북 임실 옥정호

우리는 창원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전북 임실까지 가서 전주로 가는 중간에 옥정호를 찾아갔다. 옥정호는 섬진강 상류를 막아 건설한 다목적댐이다. 저수지 안에 붕어섬이 유명이다. 높은 곳 전망대에서 보면 저수지 가운데 떠 있는 섬 모양이 붕어를 닮았다고 해서 붕어섬이라고 한다.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이 붕어섬 사진이 유명하다. 내가 보기는 우리나라 전통 붕어가 아니라 어항 속에 가둬놓고 키우는 금붕어를 많이 닮았다. 그런데 이 섬은 댐 저수량에 따라 수면 밖으로 드러나는 모양이 달라서 365일 내내 붕어 모양으로 있지는 않다. 때를 잘 맞춰가야 한다. 겨울에는 수위가 내려가서인지 붕어 모양처럼 보이지 않았다.

 

옥정호는 안개로도 유명하다. 수면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매서운 바람뿐, 안개도 거대한 붕어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평소 마음먹고 찾아오지 않으면 가보기 어려운 옥정호를 직접 눈으로 본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옥정호 붕어섬을 보려면 내비게이션에 '국사봉전망대'를 검색해서 찾아가면 된다. 잘 만든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호수를 끼고 도는 길은 드라이브코스로도 만점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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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임실과 정읍에 걸쳐 있는 옥정호. 섬진강 상류를 막아 만든 다목적 댐이다.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유명하다. / 조재영 기자

 

우리는 30번 국도를 타고 숙박 예정지로 달렸다. 서해안이 가까웠을 때 차창 밖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순백색의 눈밭이 보였다. 큰길에서 차를 내려 그곳으로 차를 몰아갔다. 거대한 저수지였다. 지도에 찾아보니 부안군에 속해있는 청호저수지다. 저수지는 너무 넓어서 그 넓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시선 저 끝에 야트막한 언덕이 없었다면 저수지와 하늘의 경계를 알기 어려웠을 정도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광활한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까지 가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는 나는 그 하얗고 광활한 눈밭에서 시베리아를 상상했다. 바람이 거셌다. 카메라를 꺼내 잠시 사진을 찍는 그 짧은 순간에도 금방 손이 시렸다. 바람 때문에 눈이 시렸다. 저 멀리 논에서 먹이활동을 마친, 셀 수 없이 많은 철새들이 작을 둑을 넘어 저수지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 상상을 끝내고 숙소를 향해 달렸다.

눈과 오토바이

한겨울에 내리는 눈은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에게 재앙이다.

눈이 내리더라도 기온이 높아서 금세 녹으면 도로만 젖을 뿐 운행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저 조심만 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눈이 녹지 않고 쌓이면 비상 상황이 된다. 눈이 쌓이면 자동차들도 네 바퀴 굴림 방식이 아닌 차들은 쉽게 미끄러져 운행이 어렵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뒷바퀴 힘으로 자동차를 움직이는 후륜구동 차는 앞바퀴 힘으로 자동차를 움직이는 전륜구동 차보다 더 쉽게 미끄러진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 중에서는 1t 트럭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출근 시간대에 창원에 급작스럽게 눈이 내렸을 때 도로 곳곳에서 안타깝게 헛바퀴만 돌리며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차들이 바로 1t 택배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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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월10일 아침 창원 지역에 눈이 내렸을 때 집배원이 우편배달용 모터사이클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집배원은 속력을 내지 못하고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나갔다. 배달 업무에 맞게 기동성과 안전성을 모두 갖춘 모터사이클이 개발되길 바란다. / 조재영 기자

 

모터사이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전륜구동, 후륜구동, 네 바퀴구동 방식이 각각 있지만 모터사이클은 오로지 후륜구동뿐이다. 모든 모터사이클은 뒷바퀴가 미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내가 모르는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 두 바퀴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데다 뒷바퀴가 미는 힘으로 움직여야 하니 더욱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이 쌓였을 때는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나처럼 선택의 여지가 있는 사람은 안타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그들 덕분에 우리가 조금 더 편안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배달업 종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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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에 있는 청호저수지. 눈이 내려 얼어붙은 저수지는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다. 저 둑위에서 나는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떠올렸다. / 조재영 기자

 

첫째는 집배원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님'자를 붙이고 싶다. 집배원들은 주로 엔진 배기량 110cc 모터사이클을 타고 우편물과 택배물품을 집집마다 배달한다. 우체국은 공공적 조직이고 그에 속한 집배원들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공무원들이다. 물론 사설우체국 집배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도 정부 우체국 집배원들과 똑같다. 오히려, 하는 일은 똑같고 처우는 아마도 더 못할 것이다. 어쨌든 지배원들은 우편물을 제날짜에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한 눈길에도 나서야 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들의 어려움은 눈 내릴 때뿐만이 아니다. 한겨울 강추위와 한여름의 폭우 속에서도 그들은 우편물을 배달해야 한다. 실제 그런 일을 해보지 않은 이들은 그 어려움을 헤아리기 어렵다. 한겨울 칼바람 속을 달릴 때 느껴지는 추위는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힘없는 하급 공무원들이기 때문에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 최근에 집배원의 과로사 등이 알려지면서 그들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생겨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들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공무원 중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분들! 대한민국 공무원 중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하는 분들!" 나는 기자로 일해오면서 여러 종류의 공무원들을 접해봤다. 아마도 내 판단이 틀렸다 하더라도 그리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날씨가 아무리 고약해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게으름을 피우면 배달해야 할 우편물과 택배 물품이 자꾸 쌓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음식 배달원들이다. 음식점 주인일 수도 있고, 직원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특정 가게에 소속되지 않고 '배달앱'을 통해 배달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 '배달앱'을 통한 음식 주문이 일반화되는 추세여서 앞으로는 가게에 소속된 이들보다는 배달만 전문으로 해주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들에게는 배달이 곧 밥이다. 먹고 사는 일이다. 눈이 내릴수록, 비가 많이 올수록, 추위가 강해질수록 음식 배달 주문은 많아진다. 춥다고, 비온다고, 위험하다고 해서 주문을 외면하면 당장 수입이 끊긴다. 눈이 아니라 눈보다 더한 것이 내려도 고객이 주문한 음식이 식기 전에 모터사이클 시동을 걸고 출발해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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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 변산오토캠핑장에 밤새 많은 눈이 내려 쌓였다. 캠핑장 관리인은 눈이 18cm나 내렸다고 얘기해주었다. / 조재영 기자

 

셋째는 퀵서비스 종사자들이다. 그들은 고객이 배달을 요구한 물품을 한 두시간 안에 상대방에게 전해줘야 한다. 그래서 모터사이클에 물건을 싣고 틈새 주행, 인도 주행을 일삼는다. 신호위반도 많이 한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법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배달 단가를 올려주고 불법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다들 그들을 비난만 할뿐 아무도 개선에는 나서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나라 모터사이클 관련 산업의 현실이다.

대략 20년 전 서울에서 퀵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눈이 내리면 퀵서비스 라이더들은 일을 꺼린다. 라이더들끼리는 '잠수탄다'고 했다.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해서 일을 나가지 않는 것이다. 법적으로 퀵서비스 라이더들은 각자가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휴일이든 평일이든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된다. 하지만 소속 회사에서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려고 라이더들을 닦달한다. "눈 오는 날 잠수 타는 라이더는 앞으로 일을 배정하지 않겠다"라며 라이더들을 집에서 끌어내 눈길로 떠민다. 퀵서비스 라이더들은 다음날 일을 배정받으려면 당장 폭설이 쏟아져도 시동을 걸고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눈길을 달리다가 넘어져서 다쳐도 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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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에서 군산시 선유도로 가려면 새만금방조제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 조재영 기자

 

군산 선유도

우리가 예약해놓은 숙소는 변산해수욕장 인근 오토캠핑장이었다. 우리가 캠핑장에 도착할 무렵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바닷가의 눈바람은 사나웠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선 저 앞쪽에서 눈이 나에게로 달려드는 것 같았다. 밖에 서 있으면 머리가 금새 하얗게 변할 만큼 눈이 내렸다. 카라반 2대를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잠자리는 넉넉했지만, 11명이 한꺼번 앉을만한 공간은 없었다. 카라반 앞에 대형 타프를 쳐서 자리를 마련하고 몇 군데 모닥불을 피웠다. 술잔이 오가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수도권에서 온 형님 한 분이 모닥불을 보고는 꼭 고구마를 구워 먹어야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고구마를 찾아 나섰다. 가까운 마트는 이미 문을 닫았고 더 큰 마트는 부안 읍내에 있었다. 눈길을 달렸다. 이미 눈이 많이 쌓여 통행하는 차가 거의 없었다. 읍내까지 가서 고구마 한 봉지를 샀다. 은박지에 싸서 모닥불에 구워 먹는 고구마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더구나 밖에는 눈이 세차게 내리고 있지 않은가.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에 포함되어 있다. 고군산군도는 전북 군산시와 부안군을 잇는 새만금 방조제 밖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이다.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관리도, 방축도, 명도, 말도 등이 포함된다. 이 중에서 신시도부터 장자도까지 다리가 놓였다. 새만금방조제에서 새로 놓인 다리를 건너 장자도까지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섬들은 모두 규모가 크지 않지만 얕은 서해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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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초겨울 속초에서 만난 이후로, 전북 부안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남쪽과 북쪽 라이더들. / 조재영 기자

 

그중에서도 선유도는 십 리에 이르는 모래해수욕장과 그 뒤에 거대한 바위산 2개가 배경을 이뤄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바위산 2개는 여러 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정감록에 이씨 다음에 정씨가 계령산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그다음에는 범씨가 고군산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이 나오는데, 젊은 부부가 범씨 나라님이 올 것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얘기가 첫 번째다. 2개 바위 중 큰 바위가 남편 바위이고 작은 바위가 아내 바위다.

또 하나 이야기는, 이곳에 유배된 충신이 매일 이곳 바위산에 올라 임금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해서 '망주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굳이 진위를 따지려 들지만 않는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 모두 바위의 생김새와 잘 어울린다. 그런데 저렇게 큰 바위는 산이라고 해야 맞을까? 바위라고 해야 맞을까? 여름에 폭우가 내리면 망주봉에서 여러 갈래로 물이 떨어져 폭포를 이룬다고 한다. 여름에 꼭 다시 한번 와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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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 선유도에 있는 선유타워./ 조재영 기자

 

선유도에는 초분이라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 묻을 땅을 구하지 못했거나, 정월에 사람이 죽으면 땅을 파지 않는다는 풍습에 따라 땅바닥에 돌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눕히고 짚이엉을 덮어 장례를 치르는 것을 초분이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 뼈만 남게 되면 이를 수습해 이장한다. 고군산군도 일대에는 이런 초분 풍습이 성행했다고 한다.

해수욕장 입구에 서 있는 타워에서는 짚라인을 타고 해수욕장 앞에 있는 섬까지 700~800m를 날아갈 수 있는데 2월 말까지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군산군도가 육지와 연결된 것을 알고 찾아온 관광객이 많은지 길은 좁은데 차가 많다. 우리는 눈길을 헤치고 선유도 가장 안쪽 방파제까지 들어갔다. 선유도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선유도라는 이름은 신선이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섬을 구석구석 돌아보면 그 이름값이 딱 알맞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 가야겠다. 그러면 그때도 또 모터사이클은 못 타고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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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유도 가장 안쪽에서 망주봉을 쪽을 본 풍경. 선유도는 바라보는 곳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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