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바라 하지메 지음
선입견,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는 순간
까마귀 역사·생존법 소개…부정적 인식 돌아볼 기회

깍깍깍깍! 배 떨어졌다고 나를 의심해? 억울해, 정말. 그냥 날았을 뿐인데 말이지. 공교롭게 때가 맞아떨어진 것뿐이라고.

내가 멍청하다는 전제 아래 기억력이 낮은 인간에게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고 묻기까지 하다니. 그건 정말 예의가 아니라고.

지금이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 불길한 새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하지만 예전엔 아니었어.

난 인간의 신화 속에 다양하게 등장해. 물론 죽음의 상징으로서의 이미지도 있지. 하지만, 그건 일부에 지나지 않아.

가까운 일본을 볼까? 일본 신화에서 난 '야타가라스'라는 새로 읽히지. 한자로 '팔지조(八咫鳥)'인데 '팔(八)' 자가 '많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해서 '매우 큰 새'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네.

하여튼 신화 속에서 야타가라스는 진무 덴노 일행이 구마노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안내를 했어. 다리가 세 개인 커다란 까마귀인데, 일본축구협회 문장에도 나오지.

다리가 세 개라는 점은 고대 중국 전설에서 유래했어. 고대 중국에는 '다리가 세 개인 까마귀는 태양의 흑점에 산다'는 전설이 있다고 해. 나 자체가 흑점이자, 태양과 지상을 오가는 새이지. 이집트에서도 난 '태양의 새'라고 불려.

북미 원주민 신화를 잠깐 볼까? 종종 큰까마귀가 조상 영혼으로 등장하고, 창세 신화에도 나타나. 보통 인간에게 빛을 주고 지혜를 전수한 존재로 대우를 받지.

시베리아와 북미 한대·극지대 수렵 민족은 큰까마귀를 모르는 것이 없는 존재로 여겨. 북구 신화의 최고신인 오딘은 또 어떻고. 오딘 양 어깨에 후긴(지혜)과 무닌(기억)이라는 두 마리 큰까마귀가 있어. 바이킹 깃발이나 문장에도 종종 큰까마귀가 등장하지.

더 말하기도 숨차네. 그러니까 신화 속에서는 지금과는 다른 이미지였는데, 인간의 수렵 문화가 목축·농경 문화로 바뀌는 과정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쌓였고, 산업사회에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반갑게도 최근에 마츠바라 하지메라는 친구가 나를 주제로 책을 썼어. 책 제목도 명쾌한데, <까마귀책>이야. 책 표지가 검은색인 게 꼭 나를 닮았네.

책을 쓴 인간은 도쿄대 박물관 특임교수야. 25년 전, 그러니까 대학생 때부터 내 매력에 흠뻑 빠졌다네. 학사 학위 논문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나만을 연구한 전문가야.

까마귀 전문가라니, 우스워 보이나? 너무 흔해서 오히려 연구를 한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들릴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의 삶과 직면한 새라는 점에서 보면 나를 연구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봐. 게다가 자주 마주치니까 그만큼 나를 잘 알면 일상의 즐거움이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거지.

함안군 한 전봇대 위로 까마귀떼가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까마귀책>에 따르면 까마귀가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시대 변화 때문이다. 인간과 가까이 살고 있는 새라는 점에서 오해가 더 깊은 면도 있다. /연합뉴스

"아무래도 까마귀는 굳이 찾아볼 만한 관심 대상이 아닐뿐더러, 하물며 전문가가 있을 턱이 없다고 여겨지는 구석이 있다. 혹은 '까마귀 연구'라고 하면 유해 조수 퇴치 연구라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도 있다. 말도 안 된다. 까마귀만큼 재미있고 귀여운 새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흥미로운 새를 보지 않다니, 인생의 재미를 절반은 날려 먹은 셈이다. 심지어 흔히 보이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다. 응? 까마귀를 싫어한다고? 괜찮다. 잠깐만 보면 좋아하게 되지는 않더라도 약간은 흥미가 샘솟을지도 모른다."(8쪽)

딱딱한 연구 서적, 까마귀 도감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저자가 직접 그린 내 모습, 나를 지켜보면서 느꼈던 단상이 생생하게 들어 있어. 더군다나 제3장은 '까마귀 취급 설명서'인데, 나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주로 썼어.

내가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방법과 까닭, 내게 머리를 차이지 않으려면 필요한 '초급 까마귀어 회화'법도 소개한다고. 참고로 내가 쉰 목소리로 '가라라라라' 하고 울기 시작했다면 무척 화가 난 상태니까 조심해.

하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까마귀가 검기로 마음도 검겠냐고.

260쪽, ㅁㅅㄴ 펴냄,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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