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시설 수준따라 명암 갈려
과학 역시 연구개발 인프라가 경쟁력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었지만, 눈과 얼음 위에서 펼치는 선수들의 열정에 가슴 뜨거웠던 보름의 시간을 보냈다. 100분의 1초,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속도 경기, 고난도 묘기를 선보이는 경기, 집중력과 전략이 어우러진 경기까지 겨울 스포츠는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한편, 선수들의 경연만큼 올림픽은 스포츠 장비의 경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스케이트·스키·썰매와 같은 속도경기의 장비는 첨단 과학기술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기저항이나 마찰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비 설계와 첨단소재의 활용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예를 들어 봅슬레이경기용 썰매는 풍동시험을 통해 공기 흐름이 최적화된 외형설계, 선수 체형을 3D스캔하여 최적의 탑승자세, 최첨단 소재인 탄소복합재로 제작된다. 가격이 2억 원에 달할 정도로 첨단기술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장비 성능 못지않게 경기력을 결정짓는 더 중요한 요소는 각국이 보유한 스포츠 인프라(기반시설)라고 본다. 스포츠 인프라는 일반인이나 선수들이 훈련이나 경기할 수 있는 스키장·빙상경기장·썰매경기장(슬라이딩 센터) 등의 대형 운동시설을 말한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봅슬레이·루지 등 썰매 종목에서 11개의 메달을 휩쓴 독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4개의 슬라이딩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컬링 분야 세계랭킹 1위인 캐나다는 컬링경기장이 1500여 개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5개의 컬링경기장에 비하면 엄청난 스포츠 인프라이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무려 16개의 메달을 수확한 네덜란드는 국제기준 경기장 개수가 17개로 우리나라의 2개에 비해 엄청난 숫자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우리보다 많은 메달을 딴 노르웨이·독일·캐나다·미국·네덜란드·스웨덴 등은 많은 눈과 춥고 긴 겨울의 지정학적 환경을 갖고 있지만, 동계 스포츠에 대한 인프라 투자가 합쳐져 우수한 성과를 낸 것이다. 한마디로 올림픽 메달 경쟁은 인프라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평창 동계올림픽 덕분에 그나마 국제 수준의 동계스포츠 인프라를 갖추었지만, 대회가 끝나기 무섭게 유지비용 부담을 내세워 경기장 철거를 거론하고 있다. 경제적 부담은 이해되지만, 선수들의 열정만으로는 메달을 기대할 수 없다. 예산·장비 그리고 인프라가 수반될 때 평창의 감동이 계속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연구개발 인프라는 매우 중요하다. 연구개발 인프라는 연구개발에 사용되는 장비·시설·실험실·연구정보데이터베이스 등을 말하며, 실험·분석·연산·시험평가 등에 활용된다. 특히, 초대형가속기·슈퍼컴퓨터·우주망원경·전자현미경 등의 연구개발 인프라는 한 국가의 과학기술력을 가늠하는 척도이며 연구 성과와 속도를 좌우한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후변화 예측은 슈퍼컴퓨터의 연산 능력에 좌우된다. 또한,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면 우주망원경은 필수적이다. 만약 이러한 인프라가 없다면, 해당 분야의 연구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구개발 인프라가 곧 과학기술 경쟁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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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 연구개발 인프라는 엄청난 규모의 시설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투자한 만큼 눈에 보이는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도 없고, 그 활용도 극소수일 수 있다. 선뜻 연구개발 인프라에 투자하지 못하는 이유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의 4개 슬라이딩센터, 캐나다의 1500여 개 컬링경기장, 네덜란드의 17개 국제스피드스케이트장이 자국에 수많은 메달을 안겨줬듯이, 연구개발에서 큰 성과를 얻으려면 연구개발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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