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진상규명위 중도사퇴한 남부희 교수 인터뷰
"고 유치준 씨 문제 관련해 위원회, 증거 내놓으라"
"조사는 하자고 해도 안 해…위원 대다수 역사의식 결여"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했다 사퇴한 위원이 조사 자체가 부실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위원회 내부에서 다양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수차례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증언은 진상조사 보고서가 부실하다는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 부마항쟁 단체들의 지적을 뒷받침한다.

남부희(71) 창원대 사학과 겸임교수는 지난달 28일 창원대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위원 활동 당시 경험을 토대로 "박근혜 정부 당시 임명된 위원들이 전반적으로 시대적 소명이나 역사적 의식이 결여됐다"며 "책임감과 의지를 가진 일부 위원과 조사관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조사 요청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조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1979년 당시 경남매일(현 경남신문) 기자였던 남 교수는 경찰로부터 입수한 자료와 출고하지 못했던 기사 원고 등을 1989년 <부마민주항쟁 10주년 기념 자료집> 작성 때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 제공했다. 남 교수는 심의를 해야 할 진상규명위원이자 고 유치준 씨 사망과 관련해 조사 대상이었다. 유족들은 고인이 항쟁 당시 시위 현장에서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진상규명위가 최근에 내놓은 보고서에는 '항쟁 관련 사망자가 아니다'고 결론 내려졌다.

남부희 교수가 지난달 28일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 시절 조사 과정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희곤 기자

남 교수는 고 유치준 씨 문제에 대해 보고서의 '모순'을 지적했다. "유 씨 문제에 대해 '증거 타령'을 계속했다. 비유하자면 한밤중에 뺑소니로 사망한 사람을 가해자, 목격자를 못 찾는다며 자살이라고 규정한 꼴이다. 나한테 타살이라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는데, 정황 조사를 하자고 요청하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병이 있었는지를 조사하자 해도 안 했다."

남 교수가 1979년 10월 19일 입수한 경찰 자료에는 '변사자' 기록이 있었고, 이는 훗날 고 유치준 씨와 일치했다. 변사자에 대해서는 '정황으로 판단, 타살체가 분명'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남 교수가 입수한 자료에는 '영장 신청자 명부', '검거 학생 현황', '투입 병력' 등이 숫자와 이름까지 상세히 나온다.

남 교수는 1979년 10월 20일 동료 김현태 기자와 변사자가 있던 현장에서 취재했었다. 그는 "인근 새한자동차 20대 중후반 영업사원 2명으로부터 '죽은 사람은 50세 전후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데모가 한창일 때 움직인 것 같고' 등 말을 직접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가 만든 보고서에는 다르게 표현돼 있다. 202쪽에 "당시 남○○(남부희) 기자와 김○○(김현태) 기자는 유치준의 사망 장소에서 소량의 핏자국을 발견하였으며, 새한자동차 직원들을 취재한 결과 유치준에 대해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고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고 들었으나 다쳤는지 여부는 모르겠다는 내용의 진술을 들었다고 하였다"라고 표현됐다. 진상규명위가 새한자동차 직원을 직접 조사했다는 흔적은 없다.

남 교수는 "2만여 시민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경찰 자료가 없었다면 검거자 등 구체적인 숫자를 어떻게 알았겠느냐. <10주년 자료집>은 진상규명위 공식 조사 자료로 채택돼 포상금 200만 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유치준 씨와 관련해서는 관련이 없다는 결과를 내놓으니 모순"이라고 말했다.

1년 동안 진상규명위 내부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던 남 교수는 지난 2015년 10월 사퇴했다. 이후 진상규명위 활동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

남 교수는 "공식적으로 4번 위원회 조사를 받았다"면서 "경찰, 검찰, 행안부, 보훈처 등에서 파견된 조사관은 6~8개월가량 일하고 나면 바뀐다. 일관성이 있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관련 단체에는 희망과 원망을 동시에 안겨준 것 같고, 언론·시민·유족에도 모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며 "관련 단체의 적극적인 요청에 역사적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며 진상규명위 부실조사 진상을 공개한 이유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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