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연극계는 연일 터져 나오는 '미 투 운동'의 태풍권에 들어 있다. 이윤택 연출가, 하용부 밀양연극촌 촌장,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 등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공연예술인들은 모두 경남에서 활동하거나 경남 문화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자들이다.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를 받는 조 씨는 가해 지목자 중 처음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사건 직후 밀양연극촌은 밀양시 지원이 끊겼고, 이 씨가 추진해 온 밀양공연예술축제도 올해 개최가 불투명해지는 등 당장 지역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사태가 낳은 연극에 대한 지역민의 불신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넉넉하지 않은 지역에서 연극이 외면을 받을 경우 경남 연극계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릴 수도 있다. 사단법인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가 최근 두 차례 연거푸 사과를 내놓은 것도 경남 연극계가 느끼는 위기의식을 잘 말해준다. 혹자는 연극계의 성범죄는 일부에 그칠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씨 등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가해자들이 추악한 성범죄 혐의를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주변의 방관이나 외면, 심지어 조직적인 은폐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합숙 생활이 빈번한 연극인의 특성상 극단 내부에서 벌어진 상습 성폭력을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피해자들은 미성년자 연령이었거나 극단에서 최말단 지위에 있는 단원이었다. 피해자들이 실명 공개라는 위험하고 극단적인 대응을 택한 것도 동료에게서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일 것이다. 경남연극협회도 "어쩌면 알고도 침묵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경남연극계가 처한 작금의 사태가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뼈를 깎는 자성과 실천이 요구된다. 경남연극협회는 이미 드러난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여 피해자들이 더 있는지, 내부의 조직적인 은폐가 있었는지 등을 밝혀내고 징계를 강구해야 한다. 또 지역 연극인 상대 전수조사를 통해 묻혀 있을지 모를 성범죄도 밝혀내야 한다. 연극계에 성폭력이 만연한 원인이 도제 시스템에 있다면 그것을 혁파할 대안도 내놓아야 한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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