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유해가 마침내 그토록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복역하고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고국을 떠나 독일로 간 지 49년 만이다. 윤이상 선생의 삶은 독재권력과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따른 질곡의 삶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음악적 세계를 완성함으로써 우리나라 현대 음악사뿐 아니라 세계 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위대한 인간 승리이며 고향 통영의 자랑이자 경남지역의 자랑이 분명한데도 그의 귀향은 너무도 늦은 것이다. 윤이상 선생의 귀향이 너무나 반가우면서도 무거운 책무를 느끼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이상 선생의 유해가 고향 통영 땅에 안식하는 과정은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재단 관계자는 반대집회와 같은 험한 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은 민주주의 시대를 맞은 오늘날까지 선생의 조국이 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선생이 그토록 원했던 조국의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생의 안식처 앞에서는 그의 귀향을 반대하는 집회도 있었다.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열망하며 길고 긴 망명생활을 견뎌 낸 선생의 삶을 뒤돌아볼 때 결코 그런 조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화 이후에도 윤이상 선생이 귀향하지 못한 것을 유념해야 한다. 성숙해지지 않은 민주주의와 분단 조국의 현실,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이 그의 귀향을 가로막았고 아직도 그것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윤이상 선생이 고향의 흙과 바다내음 속에 평안한 영면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책무로 민주주의를 더욱 가꾸어야 한다. 윤이상 선생의 희생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저지르는 폭력이 더는 있게 해서도 안 되며 온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그가 꿈속에서도 그리던 조국 통일은 아직 요원하며 전쟁의 기운마저 감돌고 있다. 민주주의가 만개하고 조국 통일이 완수된 날 그 속에 그의 음악이 찬란하게 연주될 때 비로소 우리는 그에게서 진 빚을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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