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촌 ㄱ이 특별한 건 40년 전 추석 날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시골집 전기가 고장 났고 전선을 수리하던 아버지를 놀린다고, 내가 갑자기 "뻥!" 하고 소리쳤다. 얼마나 놀랐는지 간 작았던 아버지가 뒤로 자빠지셨고 일어난 아버지는 평생 처음 나를 두들겨 팼다.

맞아서 나는 이틀째 울상이었다. 이때 "맞을 짓 했네"라며 친정에 온 고모가 나와 동갑인 딸 ㄱ에게 준 게 500원짜리 지폐였다.

500원으로 달라진 추석, 아버지와 삼촌, 고모들이 모여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춤추던 그 밤은 '뻥' 사건과 함께 ㄱ과 내가 얽힌 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하고 인상적이었던 이틀이다.

40년이 지나고, 집안 경조사에서 언제나 사촌들을 봤지만 ㄱ과 나는 이상하게 만난 적이 없다. 같은 해에 나고, 초·중학교…. 결혼을 하고 한 시설에서 근무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들은 이야기가 ㄱ의 사망 소식이었다.

숨지기 며칠 전 심하게 감기를 앓았던 ㄱ은 옮길까 봐 인근 병원에 입원했고 화재로 유독 가스를 마셨다. 구조돼 부산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밀양 화재 38번째 희생자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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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만 하면 그 500원짜리를 이야기했다던 내 사촌, 그의 죽음에 나는 악몽에 시달리다 며칠을 잠들지 못했다.

오래 보지 못한 나까지 이러는데, 부모와 자식 간, 형제들 그리고 인사하지 못한 사람들…. 모닥불을 피우고 놀던 어른들 속에서 그렇게 들떴던 40년 전 밤이 이리도 생생한데, 산 사람과 죽은 이로 나뉘어서야 더 보고픈 지금…….

이어서 39명째, 40명, 41명……. 49명, 50명, 51명까지 죽어간 게 ㄱ 사망 한 달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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