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달러 패권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
암호화폐로 세계 경제질서 재편 가늠

작년 말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기', '거품'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약 2개월이 지난 현재 이들 암호화폐 가격은 고점 대비 4분의 1 수준까지 폭락했다가 조금씩 회복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암호화폐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기 어렵다. 어떻게 활용될지,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등.

그런 중에 지난주 베네수엘라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암호화폐 '페트로'를 공식화폐로 발행한 것이다. 페트로의 기준 가치는 자국의 원유 가치와 연동되도록 설계됐다. 출발은 1페트로=약 60달러로 시작하고 발행 개수는 1억 개로 한정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페트로가 현재 자국의 공식 화폐인 '볼리바르'를 대체하는 화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국가 차원에서 암호화폐를 발행하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다. 차베스 정권을 이어받은 마두로 정권 역시 반미성향이다. 미국은 이런 베네수엘라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해오고 있다. 원유 수출로 경제를 지탱해오던 베네수엘라는 국제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서 경제가 망가졌고 미국의 제재 때문에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 인플레가 극심해서 볼리바르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마두로 정권은 페트로가 미국 달러 패권, 혹은 경제 제재를 벗어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새다. 베네수엘라는 페트로 판매 첫날 7억3500만 달러(약 7900억 원)어치가 판매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페트로 발행에 대해 "누구든 페트로에 투자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제재를 어기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페트로가 시장에 안착하도록 그냥 두지 않겠다고 미국이 입장을 밝힌 셈이다. 세계 어느 국가도 미국의 달러 패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사실상 경제적 불행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 각국 정부와 기업은 이를 잘 알고 있다.

베네수엘라 외에도 이란과 러시아도 정부 차원에서 공식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 러시아도 베네수엘라와 처지가 비슷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뿐일까? 중국과 싱가포르도 공식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더 많은 국가가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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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이후 쭉 이어져 온 미국 달러 패권의 힘은 기축통화이면서 무제한 발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암호화폐가 일상화되고 국제적으로 통용된다면 그때도 미국 달러 패권이 온전히 유지될까? 만약 EU, 중국, 일본 등이 베네수엘라와 같은 실험을 하게 된다면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 세계 경제 질서 재편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베네수엘라의 실험(미국의 제재 속 강행이라는 제한적 상황임에도) 성공 여부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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