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인격 상실한 자신 누가 존경할까
거울 닦는다고 제얼굴 깨끗해지지 않아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인물을 부를 때 여러분은 어떻게 부르시나요? 그냥 이름만 부르지는 않겠죠.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거나 나이가 어리더라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선생'이나 '님' 등을 붙여 존칭을 씁니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기여한 공이 크거나 원로 대선배는 물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들은 소설가, 시인, 화백, 장인 등 분야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선생'이란 말로 존대를 하지요. 주위에서 가끔 선생이라 불러주면 얼굴이 화끈합니다. 내 깜냥보다 더 높여 부르니 그럴 수밖에요.

우리가 뽑은 공복에게도 대통령님, 국회의원님, 도지사님이라 '님'을 붙이는데 이것은 아마 나랏일을 잘 돌봐주십사하는 염원에서 존중해주는 호칭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치켜세워 주는데도 이들은 대접받기가 싫은 모양입니다. 정치판에서는 의견이 다르다 하여 시정잡배보다 유치한 막말로 상대를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자신을 시인이나 감독이 아닌 선생님으로 추앙하며 따르는 어린 후배들을 성 노리개로 짓밟아 추악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나라 정치를 이끈다 하여 예우해주고 작품이 뛰어나다 하여 어른 대접을 하였는데 그 오만함과 인면수심이 드러나니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낮추어 공손하면 마주한 사람이 귀하게 되고 그 사람도 나에게 우러나는 마음을 내어 나도 덩달아 높이 존경받을 텐데 그것을 모르나 봅니다.

유비는 조조나 손권에 비하면 재물이나 가문의 지원도 없었고 그들처럼 지략과 카리스마를 갖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기재와 범 같은 장수들이 그를 따르고 받들어 천하를 삼분하여 차지하게 만듭니다. 남양 초당에 묻혀 지내던 제갈량은 세 번이나 허리를 굽혀 찾은 유비를 섬겨 촉한의 황제로 만듭니다. 조조군 진중에서 아들 유선을 구해 피투성이로 돌아온 조운이 품에 아들을 안겨주자 "이 어린 것 하나 때문에 훌륭한 장수를 죽일 뻔하였구려!" 하며 조운을 위무하고 칭송하였다 합니다. 이 말 한마디로 조운은 죽을 때까지 유비를 따릅니다. 명심보감 정기편에서 태공이 말합니다. "남을 헤아리려거든 모름지기 먼저 나를 헤아려보라.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나를 해치는 것이니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으면 그 입이 먼저 더러워질 것이니라."

모 당 대표는 도지사 시절 그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 중인 도의원에게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느니 쓰레기가 단식한다느니 하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런 정치인을 누가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이미 자신이 개나 쓰레기가 되어 버린 것을요.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가 거론될 때면 기자들이 대문 앞에 진을 치기도 했던 En 선생은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짓거리로 이미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권력이란 헛바람이 들어 사람을 오만하고 무례하게 깔보았으니 그대로 되돌려받는 것이지요.

사람이 사람대접 하여 사람대접 받는 것이 저들에게는 참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조선 경기가 불황이라 조선소 주위 모습이 많이 위축되기는 했어도 아침 출근 시간대 출입문 광경은 아직 장관입니다. 회사 경비를 담당하는 분들이 가장 바쁘고 곤욕스러운 시간이죠. 출입증 확인하랴 자전거와 차량 통제하랴 정신이 없습니다. "출입증 밖으로 내달아 주십시오." "자전거 내려서 끌고 가십시오." 메마른 목소리가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되는 가운데 반갑습니다 하는 인사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기에도 바쁩니다. 출근하는 사람들도 웅크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종종걸음치면서 고개만 까딱하며 지나쳐 들어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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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북새통 속에서도 나를 발견하면 깍듯이 인사를 하는 직원이 있습니다. 손 한 번 뺐을 뿐인데 말입니다. 어느 추운 날 웅크리고 지나치다가 바로 곁에서 크게 인사하는 소리에 화들짝 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처럼 고개만 까딱한 게 아니라 엉겁결에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눈인사까지 했지요. 다음 날부터 깍듯이 인사하는 그분께 저도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고개만 까딱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접받는 일이 이렇게 쉬운데 왜 그러지 못할까요. 내가 조금 바꾸면 달라질 텐데 남 탓만 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묻은 오물은 거울을 닦는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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