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협회, 혹독한 '자기반성' 성폭력 사태 사과
"묵묵히 제 길 걷는 연극인 심경 헤아려줬으면"

"죄송합니다!"

경남 연극인이 또 한 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경남연극협회는 26일 오전 10시 30분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연극계 성폭력 사태'와 관련해 사과했다. 지난 19일 김해 극단 번작이 조증윤 대표를 영구제명하면서 사과 성명을 낸 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나온 두 번째 사과다. 자성, 반성, 사죄란 단어가 가득한 두 성명 내용처럼 지금 경남 연극인은 관객 앞에 납작 엎드려있다.

◇"반성 또 반성" 연극계 정화를 위한 읍소 = 경남 연극인이 보인 이런 태도는 우선 이번 사태가 몇몇 사람이 벌인 예외적인 행동 탓이 아니라 연극판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했다는 자기반성에 따른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남연극협회 이훈호 지회장이 "전국에서 터져 나오는 폭로와 관련해 우리도 자유로운 처지에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연극이란 장르가 도제식으로 집단 작업을 하다 보니 위계질서가 강한 폐쇄적인 구조가 된 측면이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심각한 일이 사소하게 취급당했고, 그래서 어쩌면 알고도 침묵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다음으로, 그럼에도 연극을 사랑하는 이들이 여전히 곳곳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기에 관객이 이마저도 외면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번 연극계 성폭력 폭로 사태 이후 연극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경남도 이번 일로 매년 이뤄지던 연극계 지원이 끊어진 사례가 있다.

▲ 최근 사회적 파장을 부른 '연극계 성폭력 사태'에 대한 (사)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26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기자회견을 마친 경남연극협회 회원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힘든 시기 보내는 경남 대표 연극제 = 경남 연극인은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올 한 해 도내에서 열리는 큰 연극제를 제대로 치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경남에서는 여름에 열리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와 거창국제연극제, 봄에 열리는 경남연극제가 3대 연극제로 꼽힌다. 이 중 밀양공연예술축제는 이를 주도하던 사단법인 밀양연극촌이 이윤택 연출가와 하용부 촌장 성폭력 폭로로 계약 해지되면서 사실상 열리기 어려운 처지다.

올해 7월 27일에서 8월 5일까지 열리는 거창국제연극제는 지난해부터 거창군이 지원하지 않게 되면서 올해 행사비 마련도 빠듯한 상황이다. 올해로 30년째인 이 연극제는 국내 야외 연극제로는 가장 규모가 큰 행사였다. 하지만, 지난해 불거진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내부 갈등 문제로 거창군이 따로 연극제를 열면서 8억여 원에 달하던 예산 지원이 끊겼다.

거창군이 따로 여는 행사마저 지난해 말 군의회에서 예산이 전액 삭감돼 올해는 사실상 열리지 못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는 올해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으로 연극제를 치러낼 예정이다.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조매정 예술감독은 "최근 연극계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들로 연극제 비용 마련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모든 연극인이 다 그렇지는 않고, 열심히 하는 이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연극제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숙하며 묵묵히 행사 준비 = 마지막으로 당장 4월로 다가온 경남연극제는 실질적으로 경남 연극인만을 위한 무대다.

이 역시 차가운 시선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실제 경남메세나협회는 26일 올해 경남연극제 후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매년 100만 원 정도를 꾸준히 지원하던 곳이다.

하지만, 경남연극협회는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며 묵묵히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남 연극인은 오히려 이번 연극계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건강한 연극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남연극협회는 성폭력 규약 마련, 정기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 등 자체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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