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 의성의 딸들
아시아 최초 결승 진출
한국 컬링 사상 첫 '은'

한국 컬링이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수확했다. '팀 킴' 여자컬링 대표팀이 2018평창동계올림픽 결승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은정 스킵이 이끄는 대표팀은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스웨덴(스킵 안나 하셀보리)에 3-8로 패했다. 스웨덴이 점수 차를 벌리자, 대표팀은 9엔드 후 상의 끝에 패배를 인정하고 승리를 축하하는 악수를 청했다. 대표팀이 먼저 악수를 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팀은 아쉬운 표정으로 경기를 마쳤지만 아시아 국가 올림픽 결승 첫 진출, 첫 은메달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아시아 컬링 역대 최고 성적은 2010년 벤쿠버에서 중국 여자 컬링이 동메달을 따낸 것이 전부였다.

휴대전화기까지 반납하며, 혹시 조금이라도 흔들릴까 조심하던 '팀 킴'은 모든 경기를 마치고서야 눌러온 감정을 한꺼번에 표출했다.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격려했고 경기장 곳곳에 다니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무표정 카리스마'를 뽐내던 스킵 김은정을 비롯해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는 물론 대회 내내 엄격한 모습을 유지하던 김민정 감독 등 선수단 눈가는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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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컬링 대표팀./연합뉴스 자료사진

잘 알려진 대로 이들의 시작은 평범 그 자체였다. 경북 의성여고 1학년 시절 체육 시간 '체험활동'으로 컬링을 처음 접한 김은정은 곧 그 매력을 김영미에게 전파했다. 이후 언니 김영미에게 물건을 전해주러 컬링장에 왔다가 컬링을 하게 된 김경애와 김경애 따라 컬링에 뛰어든 친구 김선영, 고교 최고 유망주인 경기도 송현고 김초희까지 올림픽을 앞두고 합류하며 '팀 킴'이 완성됐다.

모두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틈이 나면 가족이 하는 농장에서 일손을 보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대가족 속에서 어른을 공경하며 사는 착한 딸이자 손녀였다. 김영미, 김경애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는 어려움도 극복했다. 김영미는 이모 같은 리더십, 김경애는 여장부 같은 리더십을 키워나가며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했다.

그들의 늠름함과 성실함은 기적을 일궈냈다. 지난 2006년 경북 '의성 컬링센터'가 들어서기 전 국내 컬링전용경기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지원은커녕 팬 응원도 부족했다.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기 일쑤였고 비인기 종목 서러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손에 컬링 미래가 달렸다는 사명감으로 스톤을 굴렸다.

2014년 소치 대회를 앞두고는 마지막 경기에서 패해 국가대표 선발 기회를 놓쳤지만 이들은 절치부심하며 다음 대회를 준비했다. '팀 킴'은 국제대회 출전으로 세계적인 팀과 겨루고, 미술 심리치료 등 멘털 강화 훈련을 도입했다. 3년 전부터는 캐나다 출신 피터 갤런트, 밥 어셀 코치를 기용해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평창에서 꿈에 그리던 올림픽 메달을 거머쥐었다. '마늘'로 유명한 작은 도시 의성을 단번에 세계적인 컬링 중심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들이 남긴 건 메달에 그치지 않는다. 독특한 캐릭터와 이야기는 누리집에서 콘텐츠로 재생산돼 평창올림픽 최대 히트상품이 됐다. '영미'라는 말로 전 국민을 뭉치게 했다. 무엇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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