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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미투 운동을 남자들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

'#MeToo' 계기 나자신 되돌아보게 돼
나락으로 떨어질 남성 구제 효과 있어

김주완 출판미디어국장 wan@idomin.com 2018년 02월 26일 월요일

나는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고통과 그 깊이를 잘 모른다. 다만 항거불능 상태에서 내 몸이 타인에게 유린되었을 때 어떤 기분인지는 좀 안다.

중학교 때였다. 나는 남해라는 시골에서 부산이란 대도시로 전학한 촌놈이었다. 교실에서 친구 대여섯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내 양팔과 어깨 다리를 번쩍 들어 책상 위에 눕혔다. 그러곤 한 놈이 내 바지를 확 벗겼다. 양팔과 다리가 붙잡혀 있으니 저항할 수도 없었다. 놈들은 팬티까지 내려 성기를 확인하곤 깔깔깔 웃으며 도망쳤다.

그들에겐 이게 장난이고 놀이였다. 알고 보니 나 말고도 당한 친구가 몇 더 있었다. 엄청난 치욕을 느꼈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의 굴욕감에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순식간의 일이라 제대로 대응이나 보복도 못한 게 원통하고 한으로 남았다.

그 후 한참 지나 하굣길이었다. 서너 명과 함께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변의를 느꼈다. 친구에게 가방을 맡기고 가장 가까운 옥외변소로 뛰어갔다. 재래식 변기였다. 쪼그려 앉아 한참 용변을 보는데, 뒤쪽의 뚫린 창문으로 마른 풀과 흙덩어리가 후두둑 날아왔다. "뭐야!" 고함을 지르며 엉거주춤 일어서 뒤돌아보니 함께 하교 중이던 한 놈의 뒤통수가 보였다. "너! 이 새끼 죽는다?"고 소리친 후 다시 앉았는데, 또 한 무더기의 흙이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이번도 불가항력 상황의 그것이었다. 머리 뚜껑이 확 열리는 것 같았다. 뒤를 닦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길로 뛰쳐나와 그놈을 잡으러 달렸다. "너, 이 새끼 거기 안서?" 다가가서 본 녀석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 면상에 정통으로 주먹을 날렸다. 녀석이 코를 감싸 쥐며 털썩 주저앉았다. 다른 친구 손에 있던 내 가방을 확 낚아채고 성큼성큼 교문으로 향했다.

잠시 후 녀석이 코피를 닦으며 "야 인마! 거기 서!"라고 외쳤다.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녀석에게 향했다. 한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녀석은 더 묵사발이 됐다. 나도 내가 그렇게 싸움을 잘하는 줄은 그때 알았다. 무릇 싸움은 분노가 큰 쪽이 이긴다. 그날 이후론 나를 괴롭히는 놈들과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말했듯이 나는 성폭력 피해여성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내가 겪은 두 가지 상황보단 훨씬 깊고 오래갈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미투(#MeToo) 운동에 나선 여성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SNS와 게시판 글들을 하나하나 찾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몰랐던 피해자의 입장, 내가 갖고 있던 편견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살아오는 과정에서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또는 저지를 뻔했던 성폭력에 대해서도 되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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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은 이런 점에서 남자들에게도 훌륭한 학습 기회가 되고 있다. 이대로 두면 미래의 고은, 미래의 이윤택, 미래의 안태근이 되어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를 많은 남성들을 구제하는 효과도 적지 않다. 현시대 남성들이 미투 운동을 고마워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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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 김주완 기자
  •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이사/출판미디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월간 <피플파워> 간행과 각종 출판사업, 그리고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 업무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