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 카즈에 지음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백서
'칭찬도 불쾌감 줄 수 있다'
피해 유형·상황 천차만별
성평등 업무 환경 중요

나는 초등학교 배구선수였다. 오전 3교시 수업까지만 듣고 종일 운동을 했다. 방학에는 배구로 유명한 어느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훈련을 했다. 고등학생 배구부 형들은 매일 야구방망이로 '빠따'를 맞았다. 그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코치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어느 날 그 코치가 나를 불렀다. 바지를 내리게 했다. 팬티도 내리게 했다. 그는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성기를 마음껏 조몰락거렸다. 두려움, 이 유일한 내 기분이었다.

나는 장난으로라도 남자가 내 몸을 만져대는 걸 질색하고 싫어한다. 하지만, 어디서나 한두 명은 꼭 장난처럼 다른 사람의 몸을 만져대는 남자들이 있다. 무척 불쾌하지만, 그냥 미소만 짓고 만다. 다들 그러려니 넘어가는데, 나만 정색하고 화를 내면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다. (#MeToo)

최근 연극계 미투운동을 보며 지난 시절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은 사십 줄에 들어선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분명히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불쾌한 기분들은 그 기억과 연결돼 있다. 지금 진행되는 미투운동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그 하나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성희롱부터 잘 알아차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책 한 권을 다시 들춰본다.

"성희롱은 단순한 강요, 명백한 추행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미묘한 상호관계 속에서 일어납니다. 현실에서 성희롱은 더욱 복잡한 형태로 진행되며, 판에 박힌 듯한 성희롱을 하는 남성은 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골적으로 일어나는 성희롱 사건도 흔치 않습니다."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무타 카즈에, 나름북스, 2015년 2월)는 애매한 지점에 있는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대부분 성희롱은 성희롱 방지 안내책자에 나오는 명백한 모습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때로는 관습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피해자에게는 보이는데, 가해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성희롱의 정의에 가깝다.

저자는 이런 지점을 회색지대라 부른다. 전형적인 예로 직장 생활에서 사람들이 칭찬처럼 하지만 불쾌감을 일으키는 말을 살펴보자. 책에서는 '역시 커피는 여자가 타 주는 게 맛있다'는 말을 예로 들었다. 이건 조금 구닥다리여서, 주변에서 다시 사례를 찾았다. 말을 하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지점들을 괄호에 넣었다.

"오늘 옷 예쁘게 입었네. 퇴근하고 데이트 가나!" (그런 사생활까지 밝히고 싶지는 않아요!)

"(시상식에서)꽃다발은 여자가 가져다줘야 기분이 좋지!" (이거 굉장히 불쾌한 발언이에요.)

"기자치고는 예쁘시네요." (뭐라는 거야! 이 사람!)

"내가 스무 살만 어렸어도 너랑 연애를 할 텐데." (내가 당신하고 왜? 정말 불쾌하고 섬뜩해요!)

"(술자리에서)남자가 사회생활하려면 그렇게 술도 한 잔씩 하고 해야지!" (남자라고 다 술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요!)

보통이라면 그저 웃으며 듣고 말지 괄호 안의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직장 생활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서비스'가 이뤄지는 곳이다. 남자든 여자든 상사나 거래처 사람들과 대화하는 동안에는 가능하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쓴다. 불쾌한 일이 있더라도 즐겁게만 마무리하면 상대방이 그만둘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개인적인 호감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주로 중년 남성들이 범하는 오류다. 대부분 성희롱으로 지목된 사람들이 '마치 누명을 쓴 것처럼'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자, 그러면 이런 회색지대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성 사건들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책이 권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결혼 안 해?'라고 집요하게 묻거나 그저 그런 상사가 노래방에서 듀엣을 하자고 청하거나 하면, '이거 성희롱 아니에요?' 하며 가볍게 잽을 날리는 방식입니다. 얼굴에 대고 '싫어요, 그만 하세요'라고 하기는 너무나 날이 서 보이니 '성희롱 아닌가요'라고 가볍게 말하는 거죠."

요점은 '끊임없이 가벼운 잽을 날려라'가 되겠다.

이럴 때 상대방이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사건은 그 정도에서 마무리된다. 다만, 무엇이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는 알아차린 후의 사과여야 한다.

기사를 읽고 아마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시대와 업무 환경이 바뀌었다고 납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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