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업체 수출길 막히면 내수 돌려 공급 과잉 우려

미국 정부가 한국 철강제품에 관세 폭탄을 던질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경남지역 철강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현대비앤지스틸 등 스테인리스 강판(특수강) 제작업체들은 이미 보복 관세를 맞고 있어 추가 피해는 적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대형 제강 기업에서 철강재를 받아 가공을 거쳐 고객사에 공급하는 대리점 성격을 띤 지역 중소철강업체들은 내수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 심화 등 영업 환경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지난 16일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 수입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는 53%라는 고율 관세 부과 대상 국가로 중국·브라질·러시아·터키·인도 등 12개국에 한국이 포함돼 있다. 12개국 중 동맹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우선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한국 철강제품의 56.2%가 강관 제품이다. 이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세아제강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세아제강은 주력공장과 본사가 포항에 있지만 창원에도 작년 기준 연간 3만 t 규모의 강관 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창원공장 관계자는 20일 "올해 생산 목표를 3만 6000t으로 높여 잡았는데, 미국 수출 길이 막히는 게 아닌지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생산 제품의 35∼40%를 수출하고, 미국 수출 비중도 높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실제 관세를 부과할지, 우리 정부가 어떤 대응 조치를 취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산 철강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조짐을 보여 국내 철강업체들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19일 충남 당진의 한 공장 공터에 열연코일 제품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스테인리스 냉연·열연 강판(특수강)을 각각 만드는 현대비앤지스틸(냉연 강판)과 세아창원특수강은 이번 통상압박 이전에 이미 반덤핑 규제 대상으로 미국으로부터 관세 폭탄을 맞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스테인리스 강판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긴장감은 늦추지 않고 있다.

스테인리스 냉연 강판 전문 제작업체인 현대비앤지스틸 관계자는 "우리 제품은 이미 미국 반덤핑 대상으로 규제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번 통상 압박이 실제 관세 부과로 이어져도 추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대미 교역이 워낙 종잡을 수 없어 미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지역 철강업계는 대형 제강업체들이 미국의 관세 폭탄 부과가 현실이 돼 국외 시장을 잃으면 그 물량을 국내에 풀어 '밀어내기식 내수 공급 과잉 → 가격 경쟁 심화 → 국내 대리점(지역 철강업체) 수익 악화'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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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연합뉴스

도내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지역의 중급 규모 철강업체는 대부분 대형 제강사 대리점 성격이 강하다. 대형 제강사로부터 원재료를 받아 이를 고객사 주문에 맞춰 자르거나 가공해서 다시 내다 파는 사업 형태다"며 "대형 제강사는 미국이 관세 폭탄을 매기면 줄어든 국외 수출 물량을 내수에서 만회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가뜩이나 공급 과잉인 내수 시장은 혼란에 빠지고 가격 경쟁 격화로 지역 철강업체들 수익 구조는 훨씬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내 또다른 한 철강업체 대표는 "대형 제강사가 국외 실적 부진을 국내 시장에서 만회하고자 내수 공급 물량을 확대하면 이는 기존 시장 교란으로 이어져 지역 철강업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치단체와 업계가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예상되는 피해 정도를 가늠해서 대응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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