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병원도 '태움' 비일비재…인력 부족 해결 급선무 지적

서울 한 병원에서 최근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해 '태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 사람을 불태워버릴 정도로 갈군다'는 태움은 '교육'이라는 가면을 쓴 '갑질'이다.

경남지역 간호사 증언과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병원 현장에서 태움은 비일비재하다. 경남에 사는 김모(27) 간호사는 지난해 2월 병원을 그만뒀다. 김 씨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다 출산과 동시에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임신으로 밤 당직을 못하게 되니 엄청나게 눈치를 줬다"며 "다른 간호사에게 '너는 사고(임신) 치지 마라'며 들으란 듯이 말했다"고 했다. 또 "3~4년차 간호사가 익숙하지 않은 신규 간호사 교육하는데 생명이 걸린 의료행위니까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는 이해되지만, 종종 터무니없이 도가 지나치다"며 "간호사 1명이 환자 40명을 관리하면서 모두가 바쁜데 그 와중에 후배는 선배 간호사에게 '도와줄 것 없느냐' 물어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쿵저러쿵 뒷담화가 엄청나고 병동 복도, 주사실, 간호사실 등에서 대놓고 타박했다"고 말했다.

한 병원에서 일하는 송모(41) 간호사는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말투나 태도가 갑처럼 행동한다"며 "학교 출신을 따져 같은 학교 후배는 챙기면서 다른 학교 출신 후배를 따돌림하듯 힘든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간호사도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선배 간호사랑 친하다는 이유로 업무 외 온갖 잡일을 다 떠맡기며 태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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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15일 서울아산병원 소속 20대 간호사가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페이스북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만연한 태움 현상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올해 1월 23일까지 7275명을 설문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1차 분석 결과를 보면 10명 중 4명 이상이 간호사나 의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 있느냐고 물었을 때 '예'라고 응답한 간호사는 40.9%, '아니요'라고 답한 이는 59.1%였다.

괴롭힌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직속상관 간호사 및 프리셉터(지도자) 30.2%, 동료 간호사 27.1%, 간호부서장 13.3%, 의사 8.3%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고함·폭언이 가장 많았고, 험담이나 안 좋은 소문, 굴욕 또는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우 등이었다. 대한간호협회는 "괴롭힘 범주가 업무적 측면뿐 아니라 비업무적 측면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며 "인권 침해를 근절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태움 현상이 군대식 문화 잔재이며 결국에는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분석도 있다. 경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도내 간호사는 1만 1364명이다. 박현성 보건의료노조 울산경남지역본부 조직국장은 "서울에서 사고가 났지만 사실 우리 지역에도 만연할 것"이라며 "긴장을 요구하는 업무 특성상 강하게 억압하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태움 현상 원인에 대해서는 "간호 인력이 부족하니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채 곧장 현장에 발을 들여야 하는 현실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노조 차원에서 폭언·폭행 없는 조직문화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극단적인 일까지 벌어지니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신규 간호사 적응 교육기간 받은 직무스트레스, 과도한 업무량과 긴 노동시간, 실수에 의한 사고 책임 부담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원인으로 판단된다"며 "진상 규명과 확고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유가족에 대한 사과, 자살사고 산재 처리와 보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조합원 1만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인권침해 등 설문조사, 산하 병원을 대상으로 사례조사를 하고 현재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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