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석대가 떠올랐다. 미성숙한 집단의 일그러진 영웅은 폭력, 위압, 비행을 일삼으며 군림했다. 비누 묻힌 손으로 수음을 강요한 행위는 본능이라는 껍데기로 포장한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을 훤히 드러냈다.

일련의 문화예술계 성범죄 파문은 대중의 깊은 상실감으로 이어졌다. 집단이라는 울타리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껍데기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어떤 이는 '관행' '관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문학계 아무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정녕 껍데기다.

변명과 침묵 앞에 대중은 상처받았다. 신뢰와 존경은 신기루였다. 애초에 추앙받을 그릇이 아니었던 셈이지만, 여러모로 상처가 깊다. 인간의 신뢰라는 것이, 그 결말이 지독하게 비극적이라는 사실만 재차 확인했다. 대중의 분노와 비난이 슬퍼 보이는 까닭이다.

증오는 쉽다. 그러나 파도가 치고 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겉만 흔들고 손을 놓아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비난만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

피해자는 세게 끌어안아야 한다. 괴물을 맹신하는 타자가 아니라, 몸소 피해자를 보듬는 신뢰의 그릇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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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이 생겼을 때 비집고 들어가 일그러진 영웅의 썩은 속살을 도려내야 한다. 그들이 낳은 작품에 숨은 흠을 찾아내야 한다. 오류는 덮어놓고, 문학적·예술적 성취는 따로 떼어 평가하는 의식은 손댈 수 없는 성전이 아니다.

지성과 아름다움은 다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은 기록으로 남겨 시간이 흘러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더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껍데기는 보내고, 알맹이만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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