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의 향기]김병로 전 진해시장
두 차례 무소속 당선 저력 보여줘
지역 정치권에 영향 컸던 존재감

김병로(사진) 전 진해시장이 지난 1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고 김병로 전 시장을 거론할 때 '진해'를 빼놓을 수 없다. 고인의 정치행로가 영광으로 평가받든 고난으로 회상되든, 그 배경에는 진해가 자리 잡고 있다. 고인은 경화초교와 진해중을 나온 진해 토박이로,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김종하 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했을 때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경남도의원에 당선됐다. 1995년 시장을 주민들이 직접 뽑게 되었을 땐, 신한국당 소속으로 초대 진해시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고인은 2006년까지 10여 년간 진해시정을 이끌었고, 3선 연임을 마친 뒤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 전 시장 재임 시기 진해는 급속도로 팽창했다. 웅동 개발이 본격화됨에 따라 인구와 재정 등 도시 규모가 날로 커지던 시기였다. 그만큼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진해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김학송 전 의원과 불화설은 김 전 시장 임기 대부분 시기를 따라다닌 일종의 정치 스캔들 중 하나였다.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도 불명확한 두 정치인의 불화설은 이 지역에서 선거가 치러질 때면 어김없이 떠도는 화제가 되었다.

신한국당 소속 민선 1기 진해시장으로 출발한 김 전 시장은 1998년과 2002년 시장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저력을 보였다. 자유한국당 전신 정당에 몸담지 않고도 이 지역에서 시장으로 당선됨으로써 진해 정치계의 거물이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김 전 시장은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러다 2012년 총선 때 무소속으로 전격 출마한다.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냄으로써 범야권 단일후보로 당시 새누리당 소속 김성찬 의원과 맞붙었으나 석패했다. 정치 재개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고인은 '진해시장 김병로'로 기억된다. 지금은 통합 창원시 진해구로 남아 있지만, 현 '진해의 그림' 대부분은 고인이 시장 재임 시절 거의 완성해 놓은 것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 평가는 후세가 할 것이고, 고인이 상당한 영향을 끼쳐온 진해 정치권의 모습 역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남아 있는 우리로서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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