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거물' 이윤택 상습 성추행 어떻게 함구됐나
연극인들 "연극판은 군대 같은 분위기…거부하기 힘들었을 것"

한국 연극계 거물 이윤택 연출가의 성추행은 어떻게 함구되었을까

설 연휴 내내 우리나라 연극계를 대표하는 이윤택 연출가의 상습 성추행·성폭행 관련 폭로가 온라인을 통해 이어졌다. 공개된 이야기를 토대로 추측하면 그의 성추행은 배우들이 합숙하며 연습하는 밀양연극촌에서 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경남 연극인들도 소문으로만 들었던 내용이라고 했다. 폭로자가 밝힌 연도를 통해 성추행은 10년 이상 공공연하게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오랫동안 함구될 수 있었을까.

◇밀양연극촌이 성추행 무대? = 이윤택 연출가는 부산 태생으로 부산과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경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밀양연극촌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도 연극촌 이사장과 예술감독으로 매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주도한다. 또,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에 도요창작스튜디오를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경남연극제 심사위원도 맡는 등 경남 활동도 활발하다.

밀양연극촌은 그가 부산일보를 그만두고 1986년 창단한 연희단거리패가 합숙하며 연습하는 곳이다. 1999년 9월 1일 연희단거리패가 밀양시 부북면에 있는 폐교 월산초등학교를 고쳐 입주하면서 밀양연극촌의 역사가 시작된다. 연희단거리패가 한국 최고 극단이라 찬사를 받던 시절이다. 성추행 폭로는 이 시절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양연극촌 초기에는 학교 중앙 사무실에서, 이후에는 이른바 '황토방'이라고 불리는 그의 개인 숙소에서 '안마'라는 형식의 성추행이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폭로 중 가장 최근은 2012년으로, 밀양연극촌은 물론 그가 김해에 만든 도요창작스튜디오에서 연습 중에 이뤄진 일이라고 한다.

이윤택 연출가. /경남도민일보 DB

◇밤이 무서웠다는 배우들 = 19세, 20세, 22세. 이윤택 연출가에게서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성들의 당시 나이다. 대부분 극단에 처음 발을 들인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한국 최고 극단에 입단했고, 이런 곳에서 하는 연극에 인생을 던지겠다고 결심한 이들이다.

선배들과 합숙하며 이뤄가는 성취가 큰 기쁨이었다고 한다. 다만, 밤마다 이뤄지던 '연출님'을 위한 안마시간만큼은 지옥 같았다고 회상했다. 막내 기수들이 돌아가며 하던 일이라고 한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치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다들 모른 척하고 지냈다고 폭로 글은 적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경남 연극인은 "연희단거리패라는 곳에 들어가서 연기하려는 배우들이 많았다"며 "그런 곳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큰 행운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때 성추행당한 배우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애써 외면하거나 피하는 일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폭로 글을 보면 공공연하게 다들 아는 사실이고, 선배 배우들도 다 알면서 말을 안 하는 분위기라는 걸 알 수 있다"며 "이제 막 배우 생활을 시작한 어린 친구들이 극단에서 제일 큰 사람에게 대항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경남 연극인은 "다른 예술 부문보다 연극판은 군대 같은 분위기"라며 "우리나라 최고 연출가니까 아무래도 더욱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폭로 글에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누구도 거부하지 못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19일 공개사과 예정 = 최초 폭로가 있은 지난 14일 이윤택 연출가는 그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대표를 통해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15일 연희단거리패 이름으로 공식 사과문을 냈다. 하지만, 이런 간접적인 방식이 오히려 사람들의 분노를 키웠다. 피해자들은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1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사태에 대해 공개 사과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사)사단법인 한국극작가협회는 17일 저녁 이 씨를 제명한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연극인 이윤택 씨의 상습 성폭행·성폭력 피의사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조사를 촉구한다'는 청원도 진행 중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