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발간
계엄사령관, 배속 부대 임의로 마산 이동시켜 시위 진압케 해

1979년 10월 '유신체제'에 항거해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법 절차를 무시한 채 마산지역 시위 진압을 위해 공수부대 투입을 지시한 사실이 39년 만에 드러났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20일 부산과 마산·창원 등 경남 일대에서 박정희 유신체제에 반발해 일어난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 투쟁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은 부마민주항쟁을 1960년 2·28대구민주화운동과 3·15의거, 1961년 4·19혁명, 1987년 6·10항쟁 등과 함께 권위주의 통치에 맞서 국민 자유와 권리를 회복한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부마민주항쟁은 진압 방식 등과 관련한 박정희 정권의 내부 갈등을 유발해 유신체제가 '10·26' 사태로 몰락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의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18일 박찬긍 계엄사령관에게 공수특전여단 1개 대대를 마산으로 이동해 39사단을 지원하라는 내용 등 15가지 지시사항을 내렸다. 위원회가 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하명사항'이라는 문건에는 공수부대의 마산지역 투입 명령을 비롯해 '난동 군중 타격' 시에는 초기 제압하라는 지시와 대학 휴교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등이 담겼다.

이에 따라 부산 계엄사령부에 배속돼 있던 1공수특전여단 2대대 소속 병력 235명은 마산으로 출동했고, 이후 실제로 시위 진압에도 가담했다. 정부는 그해 10월 16일부터 부산지역 대학에서 시작된 학생 시위가 거리로 번지며 시민 참여가 급속히 불어나자 18일 자정을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하지만 부산과 달리 마산에는 계엄령은커녕 군부대가 주둔하며 시설 경비 등을 맡는 '위수령'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산에 위수령이 내려진 것은 공수부대가 배치되고서 나서 이틀이 지난 20일 정오였다.

PYH2016101815930005100_P4 (1).jpg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 연합뉴스

마산에 군을 투입하려면 법령에 따라 경남도지사의 병력 출동 요청이 있어야 했는데, 이 같은 요구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위원회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이를 거듭 지적하며 "계엄사령관이 임의로 자신의 배속 부대를 계엄지역이 아닌 마산으로 이동시킨 것은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않고, 1공수특전여단의 마산 도착 시각이 위수령에 따른 병력 출동 전이었기에 더욱이 명백한 위법 행위였다"고 강조했다.

당시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은 부산과 마산에 각각 비상계엄령과 위수령이 정식으로 발령되기 전에 부산시장 등에게 구두로 비상계엄을 통보했고, 계엄 선포 전인 17일 오후 11시께 군이 부산에 투입돼 시위를 진압한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아울러 위원회는 1979년 10월 18일 계엄사령부가 합동수사단을 꾸려 부마민주항쟁 시위자를 조사하면서 그 배후로 북한과 당시 유력 정치인이었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을 연계시키려고 7개 주요 사건을 선정해 수사했던 사실도 파악했다. 이러한 수사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 폭행 등 가혹행위가 자행됐고, 배후세력을 만들기 위해 '마산 사제총기' 사건도 조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당시 군·경에 검거된 시위자 수가 당초 정부 발표치인 1058명을 크게 웃도는 '최소 1584명 이상'이라는 점도 새롭게 확인했다. 부마민주항쟁 연행자 구속영장은 구금 3∼15일이 지난 후에야 발부됐다는 점에서 이들 대부분은 최소 1∼2주일간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3년 넘게 진상조사 활동을 폈던 위원회는 "진상 규명과 관련자, 유족의 명예회복에 중점을 두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와 부마민주항쟁 기념재단 설립 및 기념일 제정 등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구금 10일 이상자에 대해서도 지원금을 지급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통과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