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망령 하나가 있다. 이제 그만 제 있을 곳으로 가야 하건만, 뭐 그리 한이 많은지 쉬이 떠나지 못한다. 세상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던 망령은 가을 곡식을 거둘 때 또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섭섭해하는 건 아닐까, 좋은 게 좋다는 건데…. '명절 선물 망령'이 아직도 구천을 떠돈다.

2015년 3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만들어졌다. 시행령에는 3만 원 이하 식사와 5만 원 이하 선물, 10만 원 이하 경조사비를 기준으로 하는 내용도 담았다. 올해 초 시행령은 농수축산물(화훼 포함) 선물 상한을 10만 원으로 높이고 경조사비 상한액은 5만 원으로 낮췄다. 업계에서는 '매출 상승' 혹은 '시큰둥'이라는 낱말이 오간다.

김영란법은 언론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몇 해 전만 해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으로 배달되던 선물은 골칫거리였다. 안 된다, 싫다 해도 한사코 배달된 '증오의 대상'. 어쩔 수 없이 기자회에서 선물을 모아 기부하고 영수증을 부치는 수고를 했다. 다행히 최근 기자회는 그 시스템을 없앴다. 더는 선물이 배달되지 않기 때문. 쓸데없는 일 하나가 드디어 준 셈이다.

이창언.jpg

그럼에도 '명절 선물 망령'은 뿌리깊게 박혀 있다. 행동이나 실물이 아닌 의식 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정이 없는 것 같고, 괜히 밉보이는 듯하다. 결국 망령의 속삭임에 넘어가기도 한다. 올해도 그랬다.

주지 마라. 유별난 정의가 아니다. 법대로 살되 도덕과 양심을 더하자는 말이다. 혹, 그래도 꺼림칙하다면 살가운 말 한마디로 대신하자. "국밥이나 한 그릇 합시다." 그대의 부름에 밝은 응답이 돌아오리. "네, 커피는 제가 살게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