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 (5) 왜 지방분권인가? (하)
교육·행정 등 국가 중심, 좋은 일자리 서울 집중
수험생 '인서울'이 목표, 인재·젊은층 유출 심각
중요한 일 '시·군청' 결정…읍면동은 부수적 사무만

독자들께서 이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하실까? "'지방자치' 하면 가슴이 뜁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마음이 설렙니까?"

만약 지방자치가 앞으로 지역을 살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것이다. 말만 들어도 신이 나거나 왠지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다.

공무원인 친구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지방자치 하면 뭐가 떠오르노?" "없다. 아무 느낌 없다." "지방자치에 앞장서야 될 공무원이 그래 갖고 되겄나?" "몰라, 머리 아프다 마. 고마 해라. 이 일이든 저 일이든 어차피 일이다. 나는 내 일 하고 월급 받으면 된다." 사실, 지방자치를 체감하지 못하는 건 친구나 나나 같다. 주변 사람들이나 거의 비슷하다. 지방자치, 주민자치, 주민자치센터니 아파트자치위원회니 하면서 '자치'라는 말은 난무하는데,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한다'는 자치 원리를 내 것으로 하는 시민은 드물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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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말하는 지방분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토론 자리가 있었다. 2018년 1월 19일 경남도가 주최한 '도 분권전문가 역량강화 워크숍'에서 안권욱 지방분권경남연대 공동대표(고신대 교수)가 제안했다. "왜 지방분권이 필요한지 자신이 체감한 경험을 이야기하자!"

"입시교육에는 지방이란 게 없다. 요즘 고등학교 가보면 입시지도의 유일한 목표가 '인서울'이다. 교사나 학생이나 'SKY'를 넘어서 '서성한이' '중경외시' 등등 서울지역 대학을 줄줄 왼다. 상위권 대학과 대기업 본사, 이런저런 일자리가 서울에 집중돼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지역의 우수한 애들 서울 다 가고, 부모들 뼈 빠지게 번 돈은 서울에 다 쏟아 붓는다. 이런 식이면 나중에 지역이 남아나겠나? 그 돈 지방대에 지원하고 지역에 일자리 만들면 지방이 살 것 아닌가. 애들이나 부모 덜 고생시키고."

한 참석자가 교육 분야로 물꼬를 트자 비슷한 발언이 계속 나왔다.

"저출산 문제가 그래서 더 심각해진다. 젊은 사람들 수도권으로 몰리니까 지역에는 가임여성들이 줄어든다. 서울 간 가임여성들 출산률은 더 낮다. 물가 비싸고 살기 힘드니까 아이 낳을 엄두를 못 낸다. 그런데도 교육, 경제, 문화 모든 게 서울에 집중돼 있으니 젊은이들은 서울 다 가려고 한다. 요즘 어린애들 멘토링을 해보면 꿈이 서울 가는 거고, 공무원 되는 거다. 어릴 때부터 서울 중심이고 월급 중심이다. 꿈, 적성은 온데간데 없다."(이순옥 진해YWCA 회장)

"우리집이 그렇다. 큰아들 서울 가고, 작은 아들은 충청도 갔다. 대학 찾고 직장 찾아서 다 갔다. 그래서 지금은 자주 만나지도 못한다. 돈은 돈대로 들고 부모는 외롭고 이게 뭐냐?"(임병무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상임이사)

교육 분야보다 더 많이 언급된 건 행정체제였다.

"행정체제부터 주민 생활권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읍면동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지방도 그렇다. 시청 군청에 공무원들 다 모여 있다. 중요한 업무도 집중돼 있다. 주민들 생활권인 읍면동 사무소에는 사람도 적고 하는 일도 부수적이다. 주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상하수도 설비, 도로, 교량 같은 건 따로 있다. 읍면동에서는 그걸 잘 아는데 결정권한과 사무는 시청, 군청에 있다. 주민 생활에 가장 밀접한 행정체제로 개편하는 게 지방분권 핵심이다."(강승순 창원시 성주동주민자치위 감사)

"12년간 주민자치위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실제로 하는 일이 없다. 주민자치위 주 업무가 주민자치센터 관리로 돼 있다.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일이 많다. 시청에서는 저희 마음대로 한다. 주민자치위원들이 의견을 개진하지만 소용없다."(황호룡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사무처장)

"법인세를 지방자치단체가 정하게 해야 그 지역에 기업을 유치할 것 아닌가? 이렇게 지방세 세목도 세율도 자치단체가 정하지를 못한다. 시군은 20년 단위로 도시정비계획을 세운다. 이것도 주민 생활권인 읍면동 중심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진해YWCA 이순옥 회장)

워크숍에 참석한 안권욱 지방분권개헌경남연대 공동대표. /이일균 기자

국가에서 지역공동체로

이야기를 다 들은 안권욱 대표가 평가부터 했다.

"다들 자신이 경험한 논리로 지방분권 필요성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다. 지방분권 고유의 개념과 기능에 비추면 말씀하신 논리는 60% 정도 된다는 이야기다. 이를 90% 정도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기준이 뭔지 궁금하실 거다. 그 기준은 나의 생각, 우리의 생각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다. 그게 국가인가, 지역인가 하는 문제다."

안 대표의 결론은 국가공동체 중심의 사고체계를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지금까지 국가공동체 위주의 사고를 지역공동체 중심의 사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교육이나 법률, 제도 같은 게 국가 위주로 돼 있다. 지금은 그게 한계적이다. 우리 생활과 안 맞다. 생활권 위주로 교육과 제도, 법률이 형성돼 있어야 실정에 맞다. 한국의 국민 생활만족도 지수가 지난해 10점 만점에 5.8점이었다. 브라질 6.4, 멕시코 6.2점보다 낮았다."

안 대표는 "국민 10만 명당 자살자가 30명 이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유도 그것이다. 2017년 가계부채는 1344조 원으로 국가경제의 뇌관이다.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 평균의 4배에 이른다. 청년실업률은 9.8%대로, 실업자만 100만 명을 넘었다. 이렇게 우리는 국가공동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삶을 살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역공동체 중심의 기능이 작동돼야 한다.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스위스는 평균인구 3500명 정도의 읍면동 체계 중심이다. 인구는 서울이 1000만으로 3000배 이상 많은데, 법인세 등 세목과 세율의 결정권 같은 자치단체 권한은 스위스 읍면동이 더 많다. 그들은 주민투표로 그걸 정하고, 외국인 이주민의 시민권도 마을총회에서 주민들이 직접 결정한다"고 말했다.

경남도청 자치분권 전문가 워크숍에서 토론하고 있는 참석자들. /이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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