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각, 내 가치관에 들어맞는 매거진
'젊은 아빠' 겨냥 <볼드저널> '소설가 교류의 장' <악스트> 등
계층·주제·성별 전문화...콘텐츠 힘으로 독자 확보해

2014년 <킨포크> 열풍은 대단했다. 미국 포틀랜드 시골 마을에 사는 젊은 부부가 이웃과 소박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낸 잡지는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했다. 아직도 건재한 '북유럽 스타일'과 맞물려 화려하지 않지만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따듯한 감성을 담은 사진은 하나의 유행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젊은이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킨포크>를 볼 수 있었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올해 눈여겨볼 경향으로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중시하는 '가심비', '일상 속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하는 '소확행'이 뽑혔다. 개인의 감성을 잘 파고드는 잡지들은 기존 대중잡지와 다르게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광고와 협찬 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창간도 잇따른다.

◇젊은 아버지 겨냥·여성적 가치를 내세운 잡지들 = 최민우(32·창원) 씨는 두 달 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작은 책방에 들렀다. 그곳에서 <볼드저널>을 만났다. 30·40대 남성들에게 인기라며 입고되는 순간 주인을 만난다는 말에 솔깃했다. 하지만 잡지 치곤 비싼 가격에 구매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 후 일상에서 일터에서 <볼드저널> 속 사진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인터넷을 뒤져 <볼드저널>을 구입했다. 잡지 한 권이 주는 만족도는 잡지 값 1만 8000원보다 훨씬 높았다.

2016년 5월 창간호를 발행한 <볼드저널>은 '대담한(bold)' 아버지를 겨냥해 남자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젊은 아버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잡지다.

<볼드저널>은 가족을 삶의 중심에 놓는다. 그런 면에서 계간 5호 '집' 편은 더 특별하다.

발행인 김치호 씨는 "집은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살기 위한 장소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에 사는 현대인에게 제일 큰 고민거리인 집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과 생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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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카인드.

<볼드저널>의 콘텐츠는 아주 탄탄하다. 광고 없이 200쪽 분량을 가득 채운다.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고 주제와 관련한 사회현상을 다룬다. 통계를 보여주고 대담한 아버지로 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까지 첨부한다. 계간 5호에서는 일률적인 '아파트 같은' 집이 아니라 삶을 말해주는 집, 대안을 말하는 집을 보여준다. 독자는 다양한 삶의 유형을 탐색할 수 있다.

여성적 삶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우먼카인드>도 최근 국내에서 창간호를 내고 여성 독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여성의 눈으로 새로운 가치를 읽어내려는 잡지는 2014년 호주에서 처음 발간했다. 바다출판은 지난해 11월 첫 한국판을 내고 여러 분야의 젠더 이슈를 철학과 사회학, 심리학 등으로 풀어냈다. 또한 이를 다양한 에세이와 인터뷰, 예술작품 등으로 선보여 어렵거나 진부하지 않게 했다.

2011년 처음 독자를 만난 브랜드 전문 잡지 <매거진 B>가 광고 없이도 굳건한 가운데 여행과 힐링을 중심에 놓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어라운드>, 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꺼내어놓는 <베어> 등이 확고한 독자층을 쌓고 있다.

한 30대 남성이 <볼드저널>을 보고 있다. /이미지 기자

◇일상을 넘어 전문 분야로 확대 = 뚜렷한 소재와 주제로 깊게 파고드는 전문 잡지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새로운 문예지를 표방한 <악스트>다. 2015년 첫 호를 펴낸 격월간 문예지로 작가들이 펴내고 편집위원으로 참여한다. 매호 7000부에서 1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악스트>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발행호에서 밝혔다.

"작가들을 위한 잡지가 되면 좋겠다. 독자는 물론 소설가들끼리 활발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문학은 그냥 즐거운 것이기에 악스트가 쾌락의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악스트>는 얼핏 보면 인물 잡지 같다. 호마다 한 작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펴내는데 사진과 인터뷰 내용이 기존 문예지와 확연하게 다르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문단의 생리와 관습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또 사진과 시가 만나고, 자연과학과 문학이 결합해 문학텍스트의 형식에 다양한 변주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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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스트 창간호. / 이미지 기자

매호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첫 호를 장식한 소설가 천명관을 시작으로 김탁환, 은희경, 데이비드 밴(미국)까지 화려하다. 최근 16호 인터뷰이는 소설가 이인성이다. 한 <악스트> 리뷰에는 평소 만나고 싶었던 작가를 소장할 수 있는 잡지라고 쓰였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이소영(34·창원) 씨도 SNS를 통해 알게 된 '랜선친구'가 과거에 환경잡지를 낸 것을 알고 주문했다. 바로 <그린마인드>다.

2012년 7월에 첫 모습을 드러낸 <그린마인드>는 김현정·장혜영·전지민 씨 등 3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독립출판물이다. 이들은 매월 환경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원론적이고 계몽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잡지 이름처럼 환경을 생각하는 '그린마인드'를 지닌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 그들의 방식대로 삶을 보여준다. 또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림도 아주 매력적이다. <그린마인드>는 창간 그해 독립출판물 전시회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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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마인드. /이미지 기자

이 씨는 "환경, 가족, 공동체를 생각하는 잡지에 관심이 많다. 그린마인드에 적힌 글 '북유럽을 모르지만 한국의 시골을 좀 더 아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겠다'는 말이 참 와닿더라. 지금은 출판되지 않지만 이 가치관에 함께하고 싶어 재고를 구해 읽었다"고 했다.

1970년에 창간해 동네 미용실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여성중앙>이 지난달을 끝으로 잠정 휴간을 선언했다. 사라지는 대중잡지 속에서 '당신만을 겨냥한' 잡지는 독자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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